[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의사가 된걸 매일 후회하던 나날이었죠“나도 삼신이었죠, 뭐. 하도 실수를 많이 해서 어디부터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네.”

환자를 보는 일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척척 해낼 것 같은 백경열 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의외다. 알고 보니 인턴 때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라는데, 지금이야 정형외과를 택한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는 그지만, 학부 때부터 하고 싶었던 산부인과를 인턴 근무 첫날 포기했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유난히 파란만장했던 백경렬 원장의 좌충우돌 인턴 회상기.

첫날, 꿈이 꺾이다

인턴 근무 첫날을 응급실에서 보내게 된 백 원장은 응급실 한 구석에서 수간호사에게 ‘슈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헝겊조각 두 개를 가져다 놓고 실로 잇는 법을 깨치는 것은 초짜 인턴이 치러야할 첫 번째 숙제였다. 오후 두세 시경, 오전 내내 헝겊을 이리 저리 꿰매던 초보 인턴 앞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면서 산부인과 환자가 들이닥쳤다. 상태를 보니 전치태반이었다. 엄청난 하혈에 놀란 나머지 아무 것도 못하고 산부인과 선생을 빨리 부르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결국 죽었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다 내려와서 “인턴 누구야?”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백 원장은 인턴 근무 첫날부터 구석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사실 백 원장은 처음 인턴을 시작할 때 산부인과 쪽으로 지원을 하고 간 상태였다. 첫날 첫 환자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그는 과 지망 리스트에서 산부인과를 지웠다.

벤자민 페니실린을 한 달간 맞다

그 일이 일어난 지 한 달쯤 지나 백 원장은 산부인과에 배치됐다. 새벽 두 시쯤 환자의 자궁경부가 열리는 정도를 시간마다 재면서 당직을 서고 있던 풋내기 인턴 앞에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이상한 모습의 여자가 동산만한 배를 안고 나타났다. 응급실 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녀는 아기를 낳았다. 당직을 서고 있던 레지던트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아기를 제가 받았죠. 아니 받았다기보다 애를 주운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아이는 가사 상태였는지 전혀 울지를 않았다. 간호사는 옆에서 빨리 소생술을 하라며 재촉했다. 그는 아기 입 속에 튜브를 넣고 입으로 석션을 시도했다. 그런데 빠는 힘이 너무 셌던지 아이의 입 속에 있던 끈적한 액체들이 백 원장의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모습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산모는, 선천성 매독이었다. 아이도 그것 때문에 죽은 것. 아이의 체액을 그대로 삼킨 백 원장이 감염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래서 맞은 것이 매독의 특효약인 벤자민 페니실린. 한번 맞으면 일주일 동안 걷지 못할 정도로 아픈 주사를 2주 간격으로 계속 맞아야 했다. 산부인과와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생명력의 끈질김(?)

또 다른 황당한 기억은 정형외과 병실에 입원한 한 부부의 일이다. 남편이 다리와 몸통을 모두 깁스한 상태로 꽤 오래 입원해 있던 젊은 부부였는데 어느 날 부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도저히 임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병원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두 부부는 결국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도대체 성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알고 보니, 몸집도 작은 부인이 그렇게 몸집이 큰데다 깁스까지 한 남편을 들어서 침대 밑으로 옮겼대요, 그리고는 남들이 보지 못하게 커튼을 쳤다네. 거기가 공동실이었거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 알려주는 사건이었다나 어쨌다나.

간호사들의 ‘작업’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갓 배치된 인턴들은 간호사들과 가장 많이 부닥쳤다. 일을 못 하니 욕을 얻어먹기도 했지만, 젊은 간호사들과는 가끔씩 눈이 맞기도 했다고.

간호사들이 마음에 드는 인턴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인턴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은 ‘샘플링’이었다. 새벽마다 환자들의 피를 뽑는 것은 인턴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당직 간호사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인턴이 오면 샘플링 할 시간이 돼도 그 인턴을 깨우지 않고 대신 뽑아주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단잠을 자고 난 인턴이 허둥지둥 내려와 보면 상황은 이미 말끔하게 처리돼 있었다고.

“아침잠은 많이 주무셨겠는데요?” 라는 기자의 말에 백 원장은 “에이, 나는 나이 먹은 간호사들에게 밥을 많이 뺏어먹었지.”하고 미소 지었다.

15일 밤을 꼬박 새다

백 원장이 인턴을 하던 75년 당시는 디프테리아, 백일해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과장의 지시로 디프테리아에 걸린 어린 환자를 지키게 됐다. 환자를 앞에 두고 책을 찾아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보호자는 분노를 터뜨렸다. 책 갖다놓고 공부하는 사람에게 다 죽어가는 어린애를 맡긴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장실 가고, 밥 먹는 것 외엔 병상에 붙어있던 백원장의 모습을 본 보호자는 점점 태도가 누그러졌다. 환자는 15일 째 되는 날 숨을 거뒀다. 백 원장은 그 때까지 꼬박 밤을 샜다. 아이를 잃은 보호자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10일도 못 버텼겠죠. 근데 얘가 내 환자고 내가 의사라는 생각 때문에 15일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험이 가장 중요한 학문

백 원장은 젊은 의사들에게 경험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런 만큼 인턴시절처럼 배울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있을 때 마음을 열고 한 가지라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인턴이 다 아는 것 같잖아요. 그 때는 선배의사나 과장이 진료를 하고 있으면 잘못된 게 참 많아 보이는 시절이죠. 근데 나중에 보면 그분들 말이 맞아요. 그래서 경험이 가장 중요한 학문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인턴시절의 힘들었던 기억을 기분 좋은 추억으로 털어놓는 백경열원장의 모습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려했던 젊은 인턴의 패기가 느껴졌다.■

김민아 기자 licomina@


◇ 약 력 ◇·고려의대 졸업(1974년)

·한림대부속 동산성심병원 정형외과 부과장(1980)

·인천시립병원 정형외과 수석과장(1982)

·영등포 성모병원 정형외과장(1984)

·백정형외과 이통증의학과원장(86~현)

·영등포구 의사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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