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의사들이 꿈꾸는 詩세상본지에서 발간한 ‘문학 속의 의학'이란 책의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문학과 의학은 어떻게 닿아 있을까? 둘 다 고통에서 출발하고 치유를 지향한다.' 둘 다 치유라는 개념에서 맞닿아 있다면 의사가 문학을 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치유가 가능할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며 소금기 가득한 도시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는 의술로써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들이 시로써 독자들과 조우하는 공간, ‘시와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요람인 중앙동의 카페 ‘아젤리에'.

‘시와 사상' 동인들의 집결장소인 ‘아젤리에'는 고풍스럽다 못해 오래된 서재의 음습함마저 숨어 있다. 그 곳에서 ‘시와 사상'을 이끌고 있는 김경수 선생과 박강우 선생, 김종미 편집장을 만날 수 있었다.

부산의 대표적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사상'

지난 94년 여름 창간호를 낸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사상'은 올해 10년째를 맞이했다. 시 전문 잡지를 그것도 지방에서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간도 힘들거니와 유지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년이란 시간 동안 시 전문 잡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와 사상'은 10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생존을 넘어 매회 진일보하며, 이제는 부산을 대표하는 시 전문 잡지로서 자리잡았다. 대구의 ‘시와 반시', 광주의 ‘시와 사람' 등과 더불어 전국적으로도 몇 안 되는 시 전문잡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시와 사상'은 동인들이 만드는 계간지로, 중심에는 현 주간인 김경수 선생과 박강우 선생을 위시한 의사 시인들이 있다. 시와 사상의 역사는 부산의대 시 동아리였던 ‘회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키운 시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몇몇의 멤버들이 졸업 이후 만남의 장을 가진 것이 시와 사상의 첫 단추를 꿴 서막이었다.

박강우 선생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시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문학판의 섹터주의를 극복하라

현재 ‘시와 사상'은 편집동인 14명, 기획위원 2명, 편집위원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탄탄한 뿌리를 내리며 다양한 기획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많은 마니아층과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행보가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창간 당시 5명의 의사가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1년을 준비해 힘든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지역에서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획부터 힘들었고 의사들이 만든다고 하니 부산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냉기류가 흘렀다고 한다. 심지어 아마추어라고 무시를 당하기까지 했다. 특히 문학판에 만연한 섹터주의가 그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의사라는 직업의 강렬함 때문에 의사시인이라는 것에 대한 가벼움이 있었던 셈이다.

김경수 선생은 기존 문학잡지가 발행인의 개인적인 권력화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문단에서의 권력화가 문제입니다. 순수하게 문학을 위해 잡지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발행인의 권위와 사심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시와 사상'이 뿌리내리기 위한 과정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아마추어였던 점이 더 큰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다양성을 담고 있는 큰 울타리

‘시와 사상'은 생각이나 시 스타일이 비슷한 시인들이 모인 동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사상'은 큰 울타리다. 각각의 시인들의 다양성이 포함된 큰 울타리로서 지역문학을 살찌우는 공간이 되고 있다.

지금은 의사시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동인이지만 아직도 의사인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너무나 크다. 이런 점에서 의사라는 공통분모가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온 것도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와 사상'의 큰 지향점은 문학발전을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시와 사상이 부산이라는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부산의 시가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시로 나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통권 36호를 발간한 시와 사상은 이제는 시 뿐만 아니라 지역 미술계 인사들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시도하며 심포지엄 등을 통해 활발한 지역문화 인사들과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다. 모든 예술은 맞닿아 있다는 그들의 생각처럼 지역 시단뿐 아니라 문화를 살찌우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 아름다움이 치료현장에서 의술로 이어질 때 이 세상은 얼마나 따스하게 빛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육체의 피곤함보다 가슴속이 풍족해져 옴을 느낄 수 있다.

글ㆍ사진 곽상희 기자 opensky@


시작, 꿈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김경수

내과 전문의인 김경수 선생은 현재 시와 사상의 주간을 맡고 있으며, 지난 93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와 ‘다른 시각에서 보다'가 있다.

의사들은 문학적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예술적 존재라는 그는 의사라는 직업이 생과 사를 가장 밀접하게 바라볼 수 있기에 그 생명의 신비로움에 대한 모티브가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시를 통해 꿈을 꾸는 사람이다. 첫 시집이었던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에서 그는 삶에 대한 허무감에 벗어나기 위해 시를 쓴다고 했다. 그의 시는 꿈꾸는 자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3년 뒤 ‘다른 시각에서 보다'에서도 그는 살기 위해 꿈꾸고, 꿈꾸기 위해 시를 쓴다고 밝혔다.

그에게 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천형이자 형벌이며, 축복이다. 또한 꿈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인 셈이다.

의사이자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지난 3년간 외도(?)를 잠시 했었다. 부산시의사회 공보이사로서 활동했던 그는 의약분업이라는 의료계의 풍랑 속에서 투사로 변신하기도 했다. 이것 역시 자신의 천형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제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한 번 꿈꾸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꾸는 꿈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 될 듯 하다.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꿈이 그것이다. 그는 시문화에서 멀어진 독자들을 시세계로 돌아오게 만드는, 시의 대중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의학은 예술과 맞닿아 있다박강우

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인접예술을 보면서 시적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클래식 마니아로, 악기를 다루는 연주가로, 그림까지도 그리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손꼽힌다. 그에게 있어 모든 예술은 맞닿아 있다.

그에게 있어 다양한 예술세계의 경험은 시적 언어로서 승화된다. 그의 시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지극히 미학적이다. 강요 없이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그만의 독특한 색깔이다. 그의 시는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아직 시집을 내지 않은 것이 못내 부담으로 작용한 듯 그는 ‘게으른 시인'이라고 스스로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시는 열정이다. 그의 열정은 지독스런 자기탐구와 끊임없는 현실과의 조우를 통해 이뤄진다. 스스로도 골수분자라고 부를 만큼 시에 있어서 만큼은 그는 다양한 경험과 쉬지 않는 연구야말로 시를 더욱 강렬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라 믿는 듯하다.

그는 모든 예술은 집중력과 철저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전문적인 기술에 대한 공부이기에 예술로 가는 길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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