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싱가포르 래플즈 병원엘 다녀왔다. 본지가 보건산업벤처협회 및 메디파트너(주)와 공동으로 주최한 '싱가포르-상하이 의료산업 참관단'의 일정 중에 래플즈 병원 방문이 있었던 것이다.

래플즈 병원은 싱가포르에서도 유명한 병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명한 병원이다. 지난해 샴 쌍둥이 분리수술과 조선일보의 기획취재로 인하여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고, 본지가 루춘용 원장을 초청하여 강연회와 인터뷰 등을 가짐으로써 의료계에는 더 자세하게 소개됐기 때문이다.

래플즈 병원에 대한 내용은 이미 여러 차례 다루어졌으므로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겠다(아직 잘 모르시는 분은 www.fromdoctor.com에서 본지 제197호 2003년 12월 1일자의 커버스토리를 읽으시라).

내가 래플즈 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워낙 여러 가지 경로로 그 병원 및 싱가포르 의료 제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이미 접했었기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 보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몇 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루춘용 원장이 7개월 전 한국을 다녀간 이후에 새롭게 달라진 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건강검진에 관한 부분이었다. 래플즈 병원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은 모두 7종류였는데, 그 가격이 우리 돈 약 20만원부터 약 200만원까지 다양했다. 래플즈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2박 3일간 입원하는 경우의 진료비가 약 6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한 수준의 건강검진 비용은 예상 외였다.

또 한 가지, 래플즈 병원이 자체적인 응급환자 수송 체계를 갖고 있는 점도 이채로웠다. 환자가 전화를 걸면 곧바로 앰뷸런스가 출동하는데, 24시간 운영되며 싱가포르 어디든 달려갈 뿐만 아니라 그 앰뷸런스에 래플즈 병원의 의사까지 동승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이 서비스의 이용 요금이 궁금했다. 8시부터 18시까지는 약 14만원, 18시부터 23시 59분까지는 약 17만5천원, 0시부터 7시 59분까지는 약 21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 금액에는 진찰료와 기본적인 약제비가 모두 포함된 것이다. '온 콜'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환자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는 바, 이 서비스의 요금 역시 '생각보다는' 저렴하다고 느껴졌다.

위의 두 가지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래플즈 병원에서는 정상적인 환자 진료에서 적절한(혹은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건강검진이나 응급환자 수송 같은 부분은 일종의 대 환자 서비스로, 또한 환자 유치를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어디 래플즈 병원뿐이랴, 모르긴 해도 '선진' 병원들 상당수는 이와 비슷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해 놓고 거기에다가 또 강압적인 규제를 가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우리의 병원들은 건강검진이나 매점이나 영안실이나 주차장이나 구내식당 등에서 '바가지'를 씌움으로써 적자를 벌충해야 하지 않은가. 새삼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래플즈 병원에서 지난 7개월 사이에 벌어진 주목할 만한 변화는 또 있었다. 첫째는 병원 1층 로비에 널찍한 건강기능식품 매장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단순히 매장이 생긴 것이 아니라 '래플즈'라는 브랜드를 활용하여 독자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몇 개월 전부터는 래플즈 병원에 6인실도 생겼다. 원래 1인실 아니면 2인실밖에 없었는데, '시험삼아' 2개의 6인실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민들에게도 래플즈 병원의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지만, 경영적 측면에서의 철저한 손익 계산 후에 내려진 결정이기도 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오니 복지부가 간호사의 심전도 검사 등 '국민건강 위협사례'들을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단속 대상이 꽤 여럿인데, 한의사의 의사 흉내는 목록에 없었다. 가장 심각한 국민건강 위협사례는 복지부의 탁상행정이지 싶다.

박재영 편집주간 medicaljournalist@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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