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여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노상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어디가 좋아요?” 대답은 한결같다. “어디든 다 좋지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와 자연,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거기에는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고 단지 ‘다름’만이 있을 뿐이다. 그 ‘다름’을 존중할 때만이 ‘현지’와 소통할 수 있고, 여행을 통해 자신을 살찌울 수 있는 법이다. 그동안의 적지 않은 경험을 통해 절절히 느낀 바인데, 어느 지역, 어느 곳을 가더라도 기존의 얄팍한 잣대를 버리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없다.

얼마 전 백두산을 논하면서 ‘가보지 않아도, 이름만 들어도, 사진만 보아도 가슴 한쪽을 지그시 누르는 여행지가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 느낌은, 정확한 묘사는 요령부득인데, 헐겁게 말하자면 은근히 숨이 가빠지는 현상, 뜨거운 기운이 목 울대로 서서히 치밀어 오르는 상태, 복잡다단한 마음의 정황이 고요하게 정리되는 경험 따위다. 그런데 그런 여행지로 북한에 백두산이 있다면 남한에는 지리산이 있다. 민족의 발원지인 백두산의 맥이 흘러 머무는 민족의 성산이자 반만년 부침의 역사를 빼곡이 담고 있는 역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산 밖의 생명들이 지치고 힘겨울 때, 버림받고 서러워 눈물을 찍을 때, 모든 이들을 말없이 보듬어 달래주는 어머니이자 봉우리마다 골골마다 문수보살의 서원이 서려있는 거대한 도량이 바로 지리산이다.


CURO 7월호 국내여행 코너에 그 지리산이 나왔다. 사실 여행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는 양명한 관광지일수록 부담을 느끼기 마련인데, 지리산의 ‘모든 것’까지는 아니어도 지리산의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무턱대고 산 정상에만 집착하는 맹렬한 등산보다 주변의 경관을 제대로 살피고 그곳에 얽힌 의미들을 오롯이 간파할 수 있는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했다. ‘세상의 모든 자연’이란 이름표를 붙여줄 만한 ‘지리산 10경’을 접하면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닒에 날을 헤아리지 않고 수려한 경치를 만나면 머물며,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을 뿐”이라는 옛 사람들의 풍류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정말이지 자연의 절창인 지리산이 내뿜는 도도한 흥취는 몇 잔의 술로도 잠재울 수가 없다.

지리산 관문 도시인 함양, 산청, 하동, 남원, 구례 등을 돌며 현지 의사들로부터 추천 받은 맛집과 주변 관광지들도 함께 실었다. 지리산을 나고 들 때 한번쯤은 찾아가도 좋을 만한 곳들이다. 특히 다섯 곳의 맛집들은 저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완성된 ‘묵은 장맛’을 자랑하는 식당들로 지리산 여행을 한결 풍성하게 해준다.

만일, 정신을 누이고 마음을 닦고 숨을 고르는 휴가를 원한다면 지리산 사찰 여행이 으뜸가는 대안이 될 것이다. ■

노중훈(본지 자매지 ‘CURO’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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