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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엄마’가 돌아왔다. 사회학도 출신의 아줌마 의사 이수현은, 지난 2004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본지에 ‘슬기엄마의 인턴일기’를,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슬기엄마의 주치의일기’를 각각 연재했었다. 4년간 계속됐던 연재를 중단한 지 1년 6개월 만에 슬기엄마가 다시 펜을 잡았다. ‘슬기엄마의 일기’ 시즌 3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금은 내과 전문의이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가 된 그가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 번째 글에 드러나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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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에 사는 김씨. 대장암 수술 3년 만에 재발을 진단받았다.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한 탓에 그동안 외래 추적관찰은 서울을 오가며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재발된 곳은 다행히 간 한 군데라 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위치가 양엽으로 3개가 있어 당장 수술하기보다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치료반응을 보아 향후 수술 가능성을 타진하기로 했다. 2주 간격의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로 치료를 다닐 생각을 하니, 치료도 치료지만 시간과 돈이 걱정이다.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나거나 항암제 합병증으로 고생하면 서울까지 가야 하는 일도 막막하다. 그렇게 힘든 몸으로 서울 병원으로 가도 사람 많은 응급실에서 환자 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고생할 일이 눈에 뻔하다.
경남 창원에 사는 최씨. 특별한 증상 없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했다가 4기 췌장암을 진단받았다. 췌장암에 쓰는 항암제는 매주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데, 한 번 주사 맞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30분 주사를 맞으려고 매주 KTX를 타고 진주에서 서울까지 와야 한다니, 치료비보다 교통비가 더 들 것 같다. 중간에 열이 나면 꼭 병원에 오라고 하는데, 그럼 매번 서울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굳이 서울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래도 암은 큰 병인데 서울로 다녀야 뭐라도 낫지 싶어서, 힘들어도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제주도에 사는 이씨. 이번에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병기가 꽤 높아 재발을 막으려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같이 해야 한다고 한다. 방사선치료는 매일 받아야 하는데, 집이 제주도이니 어쩔 수 없이 여관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여 방사선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방사선치료는 외래에서 받아야 한다고 한마디에 거절당했다.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오는 지방 환자가 수백 명이라며, 이들이 원한다고 다 입원해서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병원에 다른 환자들이 입원할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안 된단다. 그 형편도 이해가 되지만, 몸도 별로 편하지 않은데, 한 달 이상 여관에 머물며 치료받으러 다닐 생각을 하니 이래저래 서글프다. 입원비보다 여관비가 더 비싸니 작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오는 게 오히려 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누군가가 귀띔해 준다.

단지 ‘뭐라도 낫지 싶어서’

다른 분야도 그런 경향이 점점 강해지지만, 특히 암 치료는 서울의 4~5개 큰 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된다. 생명을 좌우하는 병이니, 큰 규모의 병원, 첨단 설비, 경험 많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여 환자들이 치러야 하는 경제적, 심리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비용을 감수하고 선택한 행위이니 시장논리에 의해 대세가 결정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발상인데, 이런 환자들을 보며 구상해 본 것이 이른바 ‘항암치료 네트워크’이다. 일정 지역 내에 큰 거점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종양내과 의사들이 근무하는 작은 단위의 병의원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수술 후 보조항암치료는 대개의 암종에서 표준치료를 하게 되는데, 표준치료는 치료 과정 중에 합병증만 생기지 않으면 특별히 결정할 사항이 없다. 그러므로 표준치료의 약제 종류, 용량, 투약 주기 등을 결정해서 치료를 시작하면 환자는 치료기간 내내 원래 치료를 시작한 큰 병원에 갈 필요 없이 거주지 근처의 병의원에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치료 중 발생하는 가벼운 합병증도 다 이곳에서 해결하고, 환자수가 몰리지 않으니 의사의 진료시간도 서울보다 더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점병원을 중심으로 인근 병의원에서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은 1~2개월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치료 과정 중에 환자 진료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나 제도적인 미흡함을 토론하며 시스템을 안정화한다. 아무래도 병원 규모가 작으면 임상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적지만 이 항암치료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대규모 임상연구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학계 연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겠다. 또한 자신이 처음 진단한 암환자도 거점병원을 통해 임상연구에 등록시킴으로써 치료의 기회를 확대시킬 수 있겠다. 이를 위해서는 거점병원과 지역병원의 의사들 간에 의료적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가동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것이다.

몇 가지 전제조건만 충족된다면

거점병원은 지역병원에서 중환이 발생하면 즉각 입원하여 치료할 수 있는 pathway를 확보하고 지역병원에서 치료 중 발생하는 이벤트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직간접적 진료 지원을 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큰 병원인 만큼 임상연구를 중심으로 수행하며 드문 암이나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집중적으로 진료하고, 지역병원의 의사, 간호사에 대한 교육, 항암치료에 연관되는 지원 인력에 대한 교육도 담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한 연계 시스템이 환자 진료과정 중에 혼란 없이 가동된다는 전제하에, 환자들도 서울의 대학병원 의사만이 최고의 진료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항암치료 주치의를 믿고, 중요한 이벤트나 재발, 치료 지침의 변경 등이 필요할 때는 거점병원으로 의뢰하고, 일상적인 치료가 진행될 때는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손해될 것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병원과 의사, 이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가끔 지방 협력병원으로 환자를 의뢰하면, 수액의 종류가 좀 달라도, 진료의 순서와 스타일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보존적 증상해결을 위해 투여되는 일반 약품의 상표가 좀 달라도, 큰 일이 난 것처럼 그쪽 병원에 항의하고 서울로 쫒아오는 환자들이 꽤 있다. 미리 설명이 되었으면, 의료진간에 좀 더 정보 교환을 밀접하게 했으면, 별것 아닌 일에 환자가 저렇게 당황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을 텐데…. 협력병원의 처우에 대해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환자를 만나면 나도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럼 그냥 우리 병원에서 치료 받으세요”라고 정리해 버린다. 특별한 임상연구 세팅이 아니라면, 항암치료를 하는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수술 후 대장암의 항암치료는 2주 간격의 5FU/leucovorin/oxaliplatin의 병용요법을, 4기 췌장암 치료에서는 매주 gemcitabin을, 수술 후 직장암의 치료는 5FU/leucovorin을 근간으로 하는 방사선항암 병용요법을 시행한다. 물론 다양한 regimen을 시도할 수 있고 병원 환경에 따라 임상연구가 덧붙여지겠지만, 정립된 표준약제로 치료하는 경우에는 굳이 ‘일류병원’을 찾지 않아도 전혀 해가 될게 없다.
이런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여러 모로 정비해야 할 것이 많고, 재원이나 운영 등 복잡한 문제가 많을 것이다. 의사의 진료수준을 표준화해야 하고, 병원간 협력을 위해 검사 및 투약 과정의 표준화, 행정적 지원방안 등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뭔가 변화는 귀찮고, 변화시켜봤자 더 나빠질 것이라는 특유의 비관론이 우세하고,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도 변하기 어렵고, 자기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기심도 바꾸기 어려우므로, 내가 궁싯거려 본 이 항암치료 네트워크는 사람들에게 그럴법하다는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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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수현은, 이화여대에서 자연과학의 기본인 물리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인 사회학을 공부했다. 의료사회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나, 응용과학의 첨단인 의학을 ‘직접’ 공부하고 싶어서 연세의대에 편입하여 4년만에 ‘쾌속’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다. 여전히 남편은 물론 딸 슬기에게도 별로 신경을 못 쓰는, 친정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고는 생활이 안 되는 30대 아줌마다.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배운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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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엄마] 항암치료 네트워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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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금의꽃  수정/삭제  댓글쓰기

    5대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자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지방 대학병원들은 서울의 병원들에 비해서 인력도 모자라고, 장비나 써비스도 부족하니 환자들 입장에서는 멀어도 아프면 서울병원을 생각하게 되죠. 그런 네트워크가 있어서 비교적 간단한 치료는 본인 집 근처에서 할수 있으면 좋겠네요.

    2009/11/17 14:30
  2. 권혁찬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류병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서울과 지방의 의료 수준이 5년이상 차이가 난다는 근거없는 믿음도 문제입니다. 표준요법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환자나 보호자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김해공항이나 부산역에서 너무나도 많은 암환자들이 서울로 가고 있습니다. 저희 병원으로 전원을 와서도 삼성서울병원이나 아산병원 수준의 서어비스를 바라는 환자가 대부분입니다. 네트워크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조건 최고만 바라는 국민성이 고쳐지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2009/11/18 08:04
  3. SYKim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자들의 인식도 문제입니다만 - 지역병원에서의 서비스도 나아져야 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친절 뭐 그런거는 말구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환자들은 정작 중요한 의사의 실력은 환자 스스로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사를 얼마나 잘 놓는지, 주사순서 헤메지 않는지, 뭐 그런 것들을 가지고 평가를 합니다. 지역병원에 갔다가 다시 오시는 분들은, 의사선생님에게는 만족하지만 주사실 시설이나 간호사들이 별로라며 다시 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사실 시설과 인력에 대한 투자가 충분해야 해결되는 것인데 그게 참 문제인 것 같습니다.

    2009/11/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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