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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뇌종양으로 수술, 방사선치료, 감마나이프, 항암치료를 다 했지만, 단 한 번도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다. MRI를 찍을 때마다 나빠지기만 했다. 상당히 공격적인 치료법을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는 우리 교수님도 오늘 아침 MRI를 보시더니 ‘이제 그만하자’ 하셨다.
글쓴이 이수현은, 이화여대에서 자연과학의 기본인 물리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인 사회학을 공부했다. 의료사회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나, 응용과학의 첨단인 의학을 ‘직접’ 공부하고 싶어서 연세의대에 편입하여 4년만에 ‘쾌속’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다. 여전히 남편은 물론 딸 슬기에게도 별로 신경을 못 쓰는, 친정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고는 생활이 안 되는 30대 아줌마다.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배운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다.
‘슬기엄마’가 돌아왔다. 사회학도 출신의 아줌마 의사 이수현은, 지난 2004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본지에 ‘슬기엄마의 인턴일기’를,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슬기엄마의 주치의일기’를 각각 연재했었다. 4년간 계속됐던 연재를 중단한 지 1년 6개월 만에 슬기엄마가 다시 펜을 잡았다. ‘슬기엄마의 일기’ 시즌 3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금은 내과 전문의이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가 된 그가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 번째 글에 드러나 있다. <편집자 주>

뇌간에 병이 있는 그녀는 의식은 멀쩡하지만 자발호흡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이산화탄소가 쌓여서 의식이 흐려지는 일이 반복되고, 그러면서 폐렴이 동반되곤 했다. 뇌간에 병이 있으니 호흡도 문제고 삼키는 기능도 안 되어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결국 위에 튜브를 연결해 인공영양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글씨를 써서 의사도 전달하고 와이브로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병원에서 지낸다. 몇 달째 퇴원하지 못하고 치료법을 바꿔가며 전전하고 있다 보니 전신적인 기운이 다 떨어진 것 같다. 기관절개상태로 지내고 가끔 밤에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이용해 호흡을 보조해주고 있다. 항암제는 그녀의 뇌 장벽을 절대 허물지 못하는 것 같다. 장벽 안쪽은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데, 바깥쪽에서 아무리 무기를 바꿔 공격해도 아직 감감 무소식인 셈이다.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교수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진다. ‘저렇게 멀쩡한 아이를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엄마가 별 말씀도 못하시고 눈물만 떨군다. ‘이번 항암치료까지는 해봅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재평가해 보죠.’ 아까 회진 돌기 전에는 ‘집이 부산 쪽이시니 이제 그쪽에서 재활치료 받으며 지내시게 해라. 항암치료는 그만하자’라고 결정했었는데…. 오후부터 항암제가 투여되기 시작하니 그녀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못보고 깊은 잠에 빠져 자고 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또 다른 그녀는 병이 좀 심하다. 오른쪽 뇌가 거의 동공 상태로 변해버린 그녀는 왼쪽 상하지를 잘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서 몸을 뒤틀며 지낸다. 그녀와의 의사소통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것 같고, 나도 그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면 대략은 무슨 맥락으로 얘기하는지 알 수 있다. 언뜻 들으면 짐승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몇 개월 전부터 병동에 나가면 대낮에도 술취한 사람의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크게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 달에 파트가 바뀌고 보니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뭐가 맘에 안 들면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인데, 다인실에 몇 개월간 있으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요즘 환자들 꽤 까칠한 편인데도 젊은 그녀의 투병만은 묵묵히 인내해 주는 모양이다. 역시 이것저것 갖가지 뇌종양에 대한 치료를 했지만 별로 변화가 없고, 얼마 전에는 보험이 안 되는 표적치료제까지 더해서 항암약물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더 나빠지는 추세이다. 결혼한 딸이 아직 첫 아이를 낳기도 전에 뇌종양을 진단받게 되자 그 뒷바라지를 하며 훌쩍 늙어버린 듯한 친정 엄마는 ‘무슨 치료라도 해주세요. 여기서 교수님이 손 놓으시면 제가 사위를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교수님도 더는 말씀을 못하시고 ‘오늘 논문 좀 찾아보고 고민해 봐라. 내일 더 논의해보자’ 하신다. ‘아니, 나에게 공을 넘기다니!’
오후 회진을 돌러 가서 해결의 국면을 찾기 힘든 환자 몇 명의 어머니들과 면담을 한다. 더 이상 시도해 볼 수 있는 표준치료나 임상연구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원칙적인 대안은 경과관찰(observation)이다.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다. 남은 시간을 더 줄이거나 더 고통스럽게 하거나.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엄마들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치료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계속 설득하던 교수님도 엄마들의 파워에 밀리시는 듯,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이렇게 항암치료를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솔직한 고민을 드러내신다. ‘지금 정도의 의사소통조차 안 될 수 있어요.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열나고 쇼크에 빠지고 엄청난 약제들을 쓰는 치료 과정이 환자를 의미 없는 고통 속에 빠뜨릴 수도 있어요. 자꾸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남은 기간을 잘 보내는 쪽으로도 생각을 해보세요.’ 보호자들과 비교적 대화를 잘 하는 편이라 자부했던 나도, 자식의 치료에 대해 집념을 갖는 엄마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 오늘 오후는 4전 4패다.
누가 서로의 행복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시행하는 치료와 여타 결정들이 진정 환자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황적으로 변동될 수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환자를 위한 결정이 정말 환자가 원하는 것일까? 의사의 결정을 뒤집을 정도로 엄마는 자식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식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과연 자식이 원하는 것일까? 엄마와 나의 결정은 환자를 행복하게 해줄까? 그러고 보니, 난 오늘 4명의 엄마들과 면담을 했는데 정작 환자 본인과는 향후 치료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설명도 해주지 않았음을 지금에야 깨닫게 된다.
환자와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면담을 하려면 일단 보호자들과 먼저 이야기를 트고, 대화를 나눌만한 조용한 공간, 그리고 결론을 서둘러 내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여 환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늘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가능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사실 난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주로 병동의 복도에서 하고, 보호자랑 대화중에 전화도 받고, 면담이 길어지면 초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두르는 모습을 노출한다.
이 원고를 정리하고 나면 빨리 저널들을 찾아 그녀들을 위해 써볼만한 약제 후보들을 정해야 할 텐데, 그렇게 밤을 새며 약 선정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과연 내가 이렇게 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이 자전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잠시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죽음을 예감하는 환자를 위해 난 무엇을……
젊은 그녀들과 엄마들을 대할 때면 나는 솔직히 힘들다. 하지만, 이제 곧 여든이 되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오후 회진은 그렇게 마음이 무겁지 않다. 그는 10년 전에 폐암으로 수술을 받고 재발 없이 지내시다가 2달 전에 복강내로 잔뜩 전이된 위암을 진단받았다. 부정맥을 조절하려고 입원하신 할아버지가 소화불량을 이유로 내시경과 복부 CT를 찍은 후 위암을 진단받으시자 충격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항암치료로 협진이 나서 할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계시고, 물도 제대로 못 넘기며 구역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체 검진을 하는데 별로 협조도 하지 않고 별 말씀도 없으셨는데, 어찌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말문을 텄고, 나는 위암에 대해 그리고 4기 위암의 예후와 치료 과정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 복강 전이로 인해 식사가 어렵고 구역감이 조절되지 않을 수 있으니 컨디션이 호전되면 완치는 안 되지만 항암치료를 하면 증상 조절에 도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설명을 드렸다. ‘그래, 나 아직 할일이 조금 더 남았으니 몇 달이라도 시간을 벌어야겠다’며 치료를 받겠다고 하셨다. 그는 그길로 번쩍 일어나 병동 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시작했고 항구토제 주사를 몇 번 맞더니 죽도 드시기 시작했다. 아직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컨디션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좋아지셔야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나름으로 노력하신 셈이다.
그렇게 일단 퇴원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증상이 악화되어 입원하셨다. 위장이 막혀 스텐트를 넣을 계획으로 내시경을 했는데 내시경 중 발생한 호흡곤란이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진행하여 결국 기관삽관까지 하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일반 병동으로 나오셨지만 그의 체력은 이만저만 약해진 것이 아니다. 나는 회진을 가면 손바닥을 마주하여 할아버지랑 ‘브라보’를 하는데, 점점 팔을 높이 올리지도 못하게 기운이 빠지더니 엊그제 폐렴이 생긴 이후로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며칠 전 컨디션이 잠깐 좋은 듯해서 “할아버지, 병원에 계속 계시는 거 너무 지루하시죠? 집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여쭤보니 할아버지는 “응, 집에 가고 싶어. 병원은 영혼이 없는 공간이야”라고 답한다. “집에 가서 뭘 제일 하고 싶으세요?” “버리고 싶어. 내 물건 정리해서 버릴 거 버리는 거….”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설정될 수 있는 것이므로 젊은 그녀들과 할아버지의 행복은 다른 모습으로 요구될 수 있겠다. 치료도 하지만, 그리고 무기력하게 그들을 보내야할 때가 더 많지만, 그들 삶의 마지막 여정 한 순간에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면 참 좋겠는데, 어디 좋은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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