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엄마’가 돌아왔다. 사회학도 출신의 아줌마 의사 이수현은, 지난 2004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본지에 ‘슬기엄마의 인턴일기’를,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슬기엄마의 주치의일기’를 각각 연재했었다. 4년간 계속됐던 연재를 중단한 지 1년 6개월 만에 슬기엄마가 다시 펜을 잡았다. ‘슬기엄마의 일기’ 시즌 3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금은 내과 전문의이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가 된 그가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 번째 글에 드러나 있다. <편집자 주>

주인공 다구치는 신경과에서 분리되어 나온 ‘부정수소외래(不定愁訴外來, indefinite complaint outpatient clinic)의 만년강사인데, 부정수소외래를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증상이 모호하고 진단이 어려우며 환자의 증상 호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검사를 통해서는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아 타과에서 이미 담당의사들과 관계가 틀어지고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구치가 반나절 외래 한 타임에 보는 환자 수는 4~5명, 환자 한 명당 40분 정도 진료하면 그날 그는 충분히 진료 임무를 완수한 셈이 된다. 환자들은 외래에 오면 자신의 증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족관계, 돈 문제, 은밀한 연애 문제까지 모두 다구치에게 털어놓고 그런 정황적인 요인들과 자신의 증상을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그렇게 말을 늘어놓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다구치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추임새를 해 줄 뿐이다. 사실 의사로부터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환자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다구치는 특별한 검사를 하지도 않고 약을 처방하지도 않고 진단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병원 당국이 의사에게 요구하는 진료실적평가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의사들은 진료하다가 관계가 틀어진 환자들의 불평불만이 쌓이기 시작하면 부정수소외래에 협진을 내서 환자를 그쪽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병원측은 고객불만창구에 사건이 접수되지 않고 의사가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에, 다구치는 많은 환자를 보지 않아도, 수익성 높은 진료를 하지 않아도, 논문을 많이 쓰지 않아도 부정수소외래를 담당하는 의사로 인정받고 있다. 다구치는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외래 환자들을 적절히 관리하며 병원, 의사, 환자 모두와 적절한 거리감을 가지고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병원에 이런 진료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현실에서 부정수소외래가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다구치라는 캐릭터의 의사가 있다면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런 외래가 있어서 환자를 그리로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불만이 쌓인 환자의 분노를 잘 다스려주면 그가 아주 고마울 것 같다. 여하간 환자는 불편하고 힘이 들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데, 의사인 내가 그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은 한정되어 있고, 다른 환자의 진료시간을 빼앗아가며 내 진료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는 밉고, 의사와 환자는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환자 진료가 아니라 보호자 진료?
환자 진료를 할 때 정작 환자의 증상과 불편감에 귀를 귀울이기보다, 동행한 보호자의 말에 휘둘리거나 그의 목소리에 진료가 점령당하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가 조폭이라거나, 보호자가 의사라거나, 보호자가 핵심 권력층의 누군가와 가까운 사람이라거나, 보호자가 성격이 너무 까다롭다거나, 보호자가 너무 유식하다거나, 보호자가 너무 말이 많을 때, 보호자와 대화하고 보호자에게 정황 설명을 하고 보호자의 불만을 잠재우느라 내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러는 과정에 내 마음도 틀어져 버리면 정작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줄고 환자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환자가 적절한 설명을 들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의사들은 이제 많지 않다. 검사를 하는 이유, 기대효과, 예후 등에 대해 가능한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다른 병원에서 옮겨 온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전 병원에서 설명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다른 의사들도 참 열심히 설명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과도하게 의료진에게 설명을 요구할 때, 내가 의과대학을 다니고 의사생활을 수년간 하면서 배운 지식으로도 쉽게 이해되지 않고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병의 기전과 진단검사 및 각 검사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할 때, 환자의 모든 증상을 하나하나 다 열거해가며 이러한 증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모두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받아 적을 준비를 하는 보호자들을 만나면, ‘내가 더 경험을 쌓아야 이런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헤쳐 나갈 텐데 아직 경험이 없어 힘들구나. 이 모든 것들이 다 트레이닝이다’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싣지 않고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솔직히 ‘욱’ 할 때가 많다.
엊그제 입원한 어떤 환자도 보호자가 지나치게 예민하여 대하기 어려웠고, 응급실에서 병실로, 병실에서 타병실로 옮길 때마다, 주치의들에게 환자 인계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 보호자 인계를 해야 한다. 말조심해라, 응급실 한 번 뒤집었다, 피검사 한 번 하는 것도 보호자가 그 의미를 캐물으니 몰아서 검사 나가라, 침대에 주사바늘 떨어져 있었다고 간호사 엄청 괴롭혔다, 이런 것들을 인계하다 보면 환자는 간데없고 보호자만 인계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전실된 환자를 처음 만난 주치의가 말 한두 마디 실수해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소리 지르고 고소 운운하는 보호자를 만나면 욱 해서 한판 붙고 싶다는 마음 반, 조용히 피해야지 하는 마음 반이다.
나는 이런 일도 겪었다. 숨 차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환자가 있었는데, 열이 나지 않고 백혈구 증가증이 없었지만 폐렴을 의심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서 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보호자가 엄청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항생제 투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보호자를 만났을 때, 그는 정말 쓸데없는 것까지 물고 늘어졌다. 한참을 실랑이한 후에야 나는 풀려날(?) 수 있었는데, 아뿔싸, 열 받은 나머지 항생제 처방 자체를 깜빡 잊은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환자의 호흡곤란은 도무지 호전되지 않았고,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허겁지겁 항생제 처방을 지시하였다.
의사가 절대적인 존재이니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거만한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의사가 환자 진료를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에게 집중하여 할 수 있게 하려면 보호자가 핵심문제가 아닌 것들로 의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더 힘든 것도 환자이고 더 상처받기 쉬운 쪽도 환자이니, 의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면 보호자도 의사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의사는 보호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순서를 정해 보자면, 환자 진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그 다음이 의사이고, 보호자는 그 다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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