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인쇄하기]
‘슬기엄마’가 돌아왔다. 사회학도 출신의 아줌마 의사 이수현은, 지난 2004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본지에 ‘슬기엄마의 인턴일기’를,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슬기엄마의 주치의일기’를 각각 연재했었다. 4년간 계속됐던 연재를 중단한 지 1년 6개월 만에 슬기엄마가 다시 펜을 잡았다. ‘슬기엄마의 일기’ 시즌 3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금은 내과 전문의이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가 된 그가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 번째 글에 드러나 있다. <편집자 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려운 형편에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마치고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24세 김양. 4기 위암, 복막 전이로 진단받았다. 그녀의 암세포는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약제에 반응하지 않고 맹렬하게 확산되었다. 계속 복수가 차고 항시 숨이 차고 음식을 잘 못 먹었다. 복강에는 물이 가득 차 있지만 혈관 내에는 체액이 부족하여 만성 탈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증상 완화를 위해 복강에 아예 관을 거치시킬 수밖에 없었다. 코에 끼운 비위관으로도 하루에 500~1,000cc가 배액되고 있었다. 더 이상 마를 것도 없는 38kg의 몸, 하얗게 질린 얼굴, 말을 하다가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라 회진 때 말 붙이기도 무서웠다. 말기 암환자. 더 이상 치료적 관점으로 환자에게 뭔가를 해 주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단계였다. 힘들어하는 증상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편안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임종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의료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검사하고 진단하고 치료하고 퇴원하는, 공장처럼 턴오버(turnover)가 빠른 3차 의료기관에서 그녀의 증상과 불편함들을 충분히 평가하고 고민하기는 어려웠다. 호스피스로의 전원을 설명하자 부모님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만 믿으니 최선을 다해달라. 여기서 치료 받으려고 온 거다’, ‘요즘 컨디션이 좀 좋아지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항암치료를 해서 살릴 방도를 강구해 달라’고만 애원하였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지금 환자에 대한 최선은 항암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지만 부모와 잘 공감되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 다치시지 않게 말도 골라가며 조심했지만, 결국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임종을 준비하셔야 된다’고 명확하게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공들여 말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임종준비를 해야 할 때가 왔구나, 정리할 게 있으면 해야겠구나 알아듣는 편인데 이 부모들은 도무지 내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정(denial)이었겠지…. 환자 상태가 더 나빠져서 hopeless discharge를 하게 되던 날,  아버지는 집으로 데려가면 태반주사라도 맞춰줄 거라고 했다. 면역치료도 다 알아봤다고 했다. 도대체 병원에서 해주는 게 없다고, 한 번에 5백만원이 들면 어떻고 천만원이 들면 어떻냐고, 일단 아이를 살리고 봐야지, 나를 원망하며 퇴원했다.

나를 원망하는 환자들 

16세 장군. 10대에 발병하는 골육종(osteosarcoma)은 항암치료와 수술을 병행하면 완치율이 꽤 높은 병인데, 장군은 그 길을 비껴갔다. 폐와 전신 뼈로 전이된 그의 암세포는 잘 컨트롤되지 않았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3년간 치료받은 그는 이미 쓸 수 있는 항암제는 거의 다 쓰고 왔다. 외래에서 교수님은 작용기전이 다른 항암제를 포함하여 마지막으로 항암치료를 해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완화되는지 가능성을 타진해보자고 설명하셨다. 이미 구부정해진 골격, 목발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그. 항암치료를 여러 번 하고 났더니 예기불안과 구토가 생겨서 이번 입원 전날에는 아예 밥을 한 숟가락도 못 먹었다고 한다. 입원 기간 내내 부모님은 뵙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장군의 침상을 지키고 계셨다. 작년 2월까지 항암치료를 했는데, 항암치료를 해도 병이 계속 나빠지고 아이가 힘들어하자, 이들은 한방으로 치료를 전환해서 침을 맞고 한약을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혈관이 없어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침을 맞고 한약을 먹는 동안 혈관도 생기고 생기가 돌며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폐 전이가 악화되면서 숨이 차기 시작하자 다시 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연하죠. 항암치료를 안하니까 혈관도 생기고 몸도 훨씬 편한 거죠. 그게 침이랑 한약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구요’라는 말이 하마터면 튀어나올 뻔 했지만 꾹 참았다. 대신, ‘통증조절에 침은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약은 당분간 중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은 항암제를 쓰고 있으니 여러 가지 약제를 한꺼번에 쓰면 간에 무리가 될 수 있으니 항암제를 하는 동안에는 한방치료를 쉬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한약이 안 되면 침은 계속 맞아도 되겠죠? 침 맞으면 아이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던데….” “이번 항암제는 골수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약제라 중간에 침을 맞다가 염증이 생기면 쉽게 염증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침은 정말 안 됩니다.” 그동안 당신들이 해 오던 한방치료를 모두 다 못하게 하자, 나를 편협한 의사인 게 뻔하다는 표정으로 보시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셨다.

뭘 해주는 게 있어야 말을 하지

원발 장기를 넘어 다른 장기로 암이 진행된 경우를 4기 암이라고 한다. 4기가 말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4기 암환자들은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병이 조절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상태가 나빠진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의 방법을 더 이상 시도하기 어려울 때, 막힌 곳에 스텐트를 넣고 관을 넣어 배액하고, 뭔가 환자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조절하기 위해 시술을 해 보아도 통증이나 피로, 호흡곤란,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조절되지 않을 때, 병원과 의사가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때가 있다. 이미 환자와 보호자는 많은 고통으로 지쳐 있다. 거기에 대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습니다’에 불과할 때, 의사로서 무기력하고 힘들다. 그런 환자들이 의사를 원망하고 떠나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주사를 한두 번 맞고 수백만원을 냈다는 둥, 어디 가서 뭘 해보면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거기로 가보겠다는 둥의 말을 할 때 차마 나는 그들에게 별 말을 못하겠다. ‘내가 뭘 해주는 게 있어야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자조하면서….
명확한 건 그들이 잡는 지푸라기는 참 비싸다는 점이다. 비싼 지푸라기의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아도 그들은 지푸라기를 던진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절박한 그들을 위해 뭔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푸라기를 던지는 사람 중에는 의사도 있고 한의사도 있다. 둘 다 아닌 무자격자도 있다. 그들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고, 환자가 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가 원해 죽기 전에 수백만원짜리 굿을 했다 해도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그래도 뭔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암 환자 한 명이 죽기 전에 지출하는 의료비는 얼마나 될까? 평생 냈다는 건강보험료와, 진단과 검사, 수술과 항암, 방사선치료 등 공적영역 의료에 지출한 진료비의 비중과 건강보조식품, 각종 보완대체요법, 암이나 각종 질병과 연관된 보험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 등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건강추구행위에 지출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될까? 어느 쪽의 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고 있을까? 지출한 비용만큼 결과는 만족할 만한가? 사실 이런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확실하지 않다. 암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치료 성적이나 생존율에 차이가 있을까? 각종 건강보조식품의 복용은 증상 완화 및 삶의 질 향상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는가? 그 모든 것들의 비용효과(cost-to-benefit)를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참 비싼 지푸라기

내가 3년차 때 일이다. 4기 대장암으로 2주마다 한 번씩, 3박4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번 입원 당시 Hb 9.0g/dl으로 경미한 빈혈이 있었다. 빈혈의 원인은 anemia of chronic disease, 즉 암 등의 만성질환이 있을 때 동반되는 빈혈이었고, 굳이 수혈을 할 필요는 없었다. 환자의 전신 상태를 고려할 때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target Hb을 10g/dl 정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그리고 그것이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난 수혈보다는 적혈구 생성촉진인자(erythropoietin)를 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처방을 보니 간헐적으로 이 주사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처방을 했다.
그런데 퇴원 당일 환자가 병동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내가 처방한 적혈구 생성촉진인자가 보험이 안 되서 평소보다 10만원 정도를 더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맞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보험도 안 되는 약을 처방해서 돈 벌려고 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중이었다. 나는 Hb 10.0g/dl 미만이면 보험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환자가 최근에 수혈을 하고 나서 한 번 12.0g/dl으로 체크된 적이 있었고, 중간에 12.0g/dl이 넘으면 보험이 안 된다는 조항이 숨어 있었다. 환자 말대로 비보험 약제를 처방한 꼴이 되었다. 나는 좀 억울했지만, 환자 입장에서도 억울하겠다 싶었다.
문득 내 시야에 그의 진료비 영수증이 들어왔다. 약 23만원의 진료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본인 부담금만). 항암제 비용뿐만 아니라 2박3일 동안 문제없이 항암제가 투여될 수 있게 간호사들이 라운딩 돌고, 입맛 없다고 해서 영양제도 주고, 진통제 등 각종 약도 주고 2주간 집에서 먹을 약도 처방해 주고, 3박4일 동안 잠도 자고 밥도 먹었는데 23만원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 때문에 더 낸 돈을 빼면 평소에는 13만원 정도를 내고 나간 모양이다.
암이라는 게 하루 이틀 치료가 아니니 돈 십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겠지만, 하루 만원 하는 병실료와 식대도 참 싸지만, 나머지 의사의 진료와 간호사의 돌봄, 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가치도 참 싸게 매겨져 있다는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퇴원하는 그의 가방 속에는 상어연골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비타민, 건강보조식품, 홍삼엑기스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쓴이 이수현은, 이화여대에서 자연과학의 기본인 물리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인 사회학을 공부했다. 의료사회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나, 응용과학의 첨단인 의학을 ‘직접’ 공부하고 싶어서 연세의대에 편입하여 4년만에 ‘쾌속’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다. 여전히 남편은 물론 딸 슬기에게도 별로 신경을 못 쓰는, 친정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고는 생활이 안 되는 30대 아줌마다.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배운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다.

Writer profile
author image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 해가 땅에 꺼지도록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다.
날아가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

[슬기엄마] 환자들의 돈은 어디로 새고 있나?

트위터 이웃에게 기사를 전하세요. [retweet] 클릭!

TRACKBACK :: http://doc3.koreahealthlog.com/trackback/35853




 



헬스로그

Copyright ⓒ 2009 헬스로그.All rights reserved.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99-1 루튼빌딩 2층 주식회사 헬스로그 webmaster@healthlog.kr
이 사이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전재·복사·배포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