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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남(하동우리들병원 신경과)

“나는 의사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다.”

2년 전 이맘 때 쯤이었던가,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TV 의학드라마에서 주인공역의 배우가 되뇌던 독백이 무척이나 가슴 시리게 다가왔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의사라면 나는 의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공중보건의사로 배치를 받은 시골의 요양 병원에서 맞닥뜨린 세상은 이전까지 내가 보아왔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낯선 곳이었다. 오랜 투병 생활에 지친 건 환자가 아닌 보호자였고, 치료를 위해 입원하기 보다는 남겨진 가족들의 삶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보내져야만 했던 많은 외로운 이들이 내 삶속으로 옮겨왔다. 의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나를 한 뼘은 더 자라게끔 만들어 주었던, 그렇지만 목 놓아 울어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먼 길을 떠나야만 했던 내 환자들의 이야기이다.
문을 열고 나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땀에 젖은 옷에 부딪히는 초겨울 바람이 꽤 매섭다.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격한 심장마사지 때문이었는지 손끝이 떨린다. 어느새 병동에서 연락이 갔는지 영안실 직원이 침대를 밀고 병원으로 들어서며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담배 맛이 쓰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건 몹시도 무더웠던 여름날 오후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경기도 어느 노숙자 시설에서 연락이 되어 입원이 의뢰되었다는 그는 남루한 옷차림에 잔뜩이나 겁을 먹은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
대답이 없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
허공을 응시한 채 말없이 서 있는 그의 몸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동행한 직원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말씀을 못하시나 봐요?”
“아, 네. 저희 시설에 오신 지 얼마 안됐지만 한 번도 말씀 하시는 걸 보지는 못했습니다. 말씀을 알아듣는 것 같기는 한데 저희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멀쩡히 자식들이 있는데도 거리에서 생활하는 70세가 넘은 노인을 안타까워한 주민들이 이래저래 연락을 해서 노숙자 보호 시설로 옮겨온 지 열흘 남짓이 지났지만 항상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식사도 같이 하지 못하고 잠도 혼자서 구석에 웅크려 자는 모습이 나아지지 않아 치매 환자가 아닌가 싶어 모시고 왔다는 말만을 남기고 시설의 직원은 떠났다. 그리고 그는 병동에 입원을 했다.
다음날 병동 회진 길에 구석에 홀로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어젯밤에는 잘 자던가?”
“아뇨, 계속 저렇게 웅크리고 앉아 있던데요.”
 “말은? 무슨 이야기라도 했어?”
 “아무 말 않던데…. 물어보면 피해버려요.”
 “보호자는?”
 “시설 직원이 전화번호를 주고 갔는데 연락이 안 되네요.”
매일 똑 같은 곳에서 똑 같은 자세로 웅크린 채 앉아있던 그가 하루하루 시야에 익숙해지며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오더를 내다가 그의 이름이 적힌 차트가 보일 때에만 “OOO 환자는 요즘 어때요?” 라고 겨우 관심을 가질 정도로 그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져 갈 무렵, 그가 다시 내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과장님, OOO 환자 있잖아요?”
“왜요?”
“배가 자꾸 불러와요, 열이 나면서.”
“그래요?”
여전히 환자는 침대에 누워 불안한 시선만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환의를 젖히니 제법 불룩해진 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가스가 찬 것 같은데, 할아버지 아파요?”
“…”
아랫배를 누르니 허공을 향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잠시 찡그리는 표정을 보이더니만 이내 무표정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을 못하니 알 수가 있나, 사진 찍고 랩을 한번 해봅시다.”
잠시 후 나온 검사 결과는 심한 백혈구 증가 소견을 보여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그의 뱃속에 발생했음을 보여 줬다.
“외진 나가서 CT나 초음파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보호자 연락해 봐요.”
“과장님, 저희가 연락 해 봤는데 보호자가 연락이 되지 않는데요.”
“그럼 시설에라도 보호자 연락해 달라고 부탁해야지.”
“그렇게는 해 놓았습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흘러도 보호자의 연락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복부 팽만은 점차 심해져갔고 이 병원 안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처치를 다했는데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코로, 항문으로, 호스를 주렁주렁 꼽고서도 그는 내내 표정 없이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항생제를 최고 용량으로 사용해도 혈액 검사 역시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을 무렵 보호자와 연락이 되었다.
“과장님, OOO 환자 보호자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뭐라던가요?”
“자기들이 바빠서 도저히 올 겨를이 없다고 그냥 이대로 보고 있으라는데요.”
“돌아가실 수 있다고 이야기 했어요?”
“예, 그래도 못 온답니다.”
“무슨 그런 보호자가 다 있어. 내가 직접 통화해 볼게요.”
“아드님이 무슨 회사 운전기사라서 밤에만 통화가 된다네요.”
“알겠어요.”
수화기 너머 신호음이 울린 지 한참이 되어도 응답이 없어 끊으려는 찰나에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삶의 피로가 묻어나는 한마디가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었다.
“OOO 환자 보호자 되시나요? 담당 의사인데요.”
“네.”
“아까 낮에 병원에서 전화 받으셨죠?, 할아버지 상태가 많이 안좋습니다.”
“제가 요즘 많이 바빠요.”
“할아버지 상태가 많이 나빠져서 큰 병원으로 전원 하셔야 할 것 같아 전화 드렸습니다.”
“낮에 이야기 다 했는데요.”
“이대로 두시면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바빠서 가 볼 형편이 못되니 돌아가시면 영안실로 보내주세요.”
“아니, 그래도….”
'뚜뚜뚜뚜…' 전화가 끊겨 버렸다.
그가 어떤 아버지였는지 나는 몰랐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얼마나 바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자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처럼 태연해하고 또 귀찮아하는 아들의 모습이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미웠다.
점점 환자는 나빠져만 갔다. 항생제를 바꾸어 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배는 '뻥'하고 터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고 호흡도 힘들어져 갔다. 회진 길 혼자만 덩그런히 남겨진 병실에서 여전히 허공만을 바라본 채 누워 있는 그의 곁에 앉았다.
“할아버지 어떻게 하죠? 제 능력으로는 이제 더 해볼 게 없는데요.”
“…”
“미안합니다. 못살려 드려서….”
그 순간 그가 떨리는 손으로 내 가운을 잡아당겼다.
“아…프…다….”
“네? 뭐라구요?”
‘삐삐삐삐…’
황급히 그의 몸에 붙어있던 모니터의 알람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간호사!”
기관 삽관을 하고 중심 정맥관을 삽입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인 줄 알았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그에게 그 굴곡졌을 인생의 자락을 놔버리지 말라며 끝까지 붙잡아 주는 이가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살려내지 못하는 의사로서의 마지막 작별인사이자 떠나가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일 것만 같았다. '우두두둑'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계속해서 심장 마사지를 했다.
“과장님,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계속해요.”
“과장님….”
“계속 하라니깐!”
옷을 갈아입으려 진료실로 들어오니 어느 샌가 그의 차트를 가져다 놓았다. 차트를 열었더니 흰 종이가 보였다.
'사망진단서'
이름을 적고, 생년월일을 적었다. OO년 11월 27일 생, 열이틀이 지나면 팔순 생일이었다. 79년 353일의 삶을 살았던 그는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프…다'는 한마디의 말 만을 남기고는 세상을 떠나갔다.
선행사인: 마비성 장폐색 의증
중간 선행사인: 대장 천공 의증
직접사인: 다발성 장기 부전을 동반한 패혈증
그 어디에도 그의 외로운 임종을 달래줄 말을 적을 공간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사망진단서의 종이 한 장으로만 남겨졌다. 

<수상소감>

손승남(하동우리들병원 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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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 번째 수상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장려상입니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적은 많은데 한번도 1등을 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제 글쓰기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변덕 심하고 짜증스러운 초보 과장의 까탈스런 오더들을 항상 최선을 다해 수행하려 애써주었던 사랑하는 한명숙 수간호사와 병동 가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하루 종일 환자들과 부대끼며 조금이라도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했던 여러분들의 노력을 잊지 못할 겁니다. 또 항상 철부지 같은 남편이랑 기꺼이 같이 살아주고 있는 집사람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는 가족들, 병원 동료들.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분들께 소개 시켜주실 자리만 생기면 ‘이 녀석이 글을 잘 써요’라는 말씀으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못 들게끔 만들어주시는 영원한 스승님, 임병훈 교수님께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공보의가 끝나고 내년에는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갑니다. 결혼 3년째인데 아직까지 저에게 새로운 생명을 보내주시지 않는 이유가 떠나가려하는 더 많은 생명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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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필문학상-장려상] Far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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