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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엄마’가 돌아왔다. 사회학도 출신의 아줌마 의사 이수현은, 지난 2004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본지에 ‘슬기엄마의 인턴일기’를,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슬기엄마의 주치의일기’를 각각 연재했었다. 4년간 계속됐던 연재를 중단한 지 1년 6개월 만에 슬기엄마가 다시 펜을 잡았다. ‘슬기엄마의 일기’ 시즌 3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금은 내과 전문의이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가 된 그가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 번째 글에 드러나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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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회에 가면 구석에 숨어서 열심히 필기하며 강의를 듣는 편에 속한다. 교수님들은 “잘 모르더라도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지만, 질문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질문 제대로 못했다가 바보 되는 경우, 솔직히 많이 봤다. 아직은 구석에 찌그러져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내 수준에 맞다고 생각하는데, 하루 빨리 플로어에 나가 당당하게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얼마 전에도 학회에 갔었는데, 뒤에 앉았더니 집중도 잘 안 되고 화면도 잘 보이지 않아서 제일 앞줄로 나가서 강의를 듣기로 했다. 앞에 앉으니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고,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근처에 계신 교수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저절로 훔쳐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나야 종양학 분야에 입문한 지 2년째에 불과한 강사 신분. 여러 병원의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은 적은 꽤 있어도,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분들은 많지 않다. 때문에 교수님들도 내 존재를 별로 의식하지 않으시고 자연스럽게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선생님, 제가 여차저차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요, 반응은 좋은데 이 약을 언제까지 쓰는 게 좋을까요? 이렇게 쓰면 보험에서 문제는 없을까요?”
“글쎄요, 저는 몇 년까지 써봤어요. ○○○연구에서 데이터가 있으니까 근거는 있는 셈이에요. 그런데 저도 너무 오래 쓰는 것 같아서 끊었더니 금방 재발하더라구요. 그런데 또 다시 썼더니 좋아졌어요. 근데 보험으로 쓰려면 심평원에 서류를 좀 많이 제출해야 할 거에요.”

“선생님, 이 약을 이러이러한 경우에 쓰는 게 보험이 안 되는 건가요? 전 얼마 전에 삭감 당했다고 통보받았어요. 환자는 치료가 잘 되고 있는 중인데, 삭감 당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환자는 비급여라도 쓰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불법진료가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소견서에 이러이러한 내용을 쓰면 통과시켜주는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는데 삭감 안 당했어요. 그럴 때 한 6개월 계속 소견서를 쓰면 통과되기도 해요”

“선생님은 이러이러한 환자 보신 적 있으세요? 제게 지금 이런 환자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저러저러한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는데, 별로 치료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환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특별히 시도해 볼만한 약제조합이 없는데…”
“그럴 땐 현재 약제가 독성이 심해서 쓸 수 없는 것처럼 의무기록을 남기신 다음에 무슨무슨 약을 쓰면 삭감 안 되고 보험으로 쓸 수 있어요. 단 3주기 돌린 다음에는 CT를 찍어서 어찌어찌 평가를 꼭 하셔야 해요.”

선생님들은 학회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쉼 없이 환자들 케이스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의견을 나누고 계셨다. 서로 노하우를 알려주고 ‘꽁수’도 알려주며 의견 교환에 한창이시다. 나 같은 피라미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했던 선생님들, 그들의 유창한 강의만큼, 유수의 대학 병원에서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환자 진료에도 거칠 것 없이 ‘척척’이신 줄 알았는데, 너무 솔직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며 고민하고 서로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아니, 고명하신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모르시는 게 많았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암환자를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며, 교과서나 논문에서 제시하는 도식화된 지식, 표준적인 방식만으로는 환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병의 특징을 고려한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도 한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치료도 치료지만 심평원 심사 피해가기, 보험으로 청구하기, 임의비급여 처리하기 등 진료비와 관련된 문제가 주를 이루었고, 건강보험 적용을 가능하게 하도록 서류를 작성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곤소곤 상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얼마 전 유방암에서 특정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수개월간 자료를 준비하고 근거를 만들어 심평원에 제출했던 파일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유방암 환자에서 이 약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지, 예상되는 환자 수와 비용은 얼마나 발생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외국의 문헌과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여 자료를 만드셨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요즘처럼 개인의 업적이 생존전략의 핵심을 차지하는 시대에, 내 업적에 도움 안 되고 잔뜩 준비했다가도 승인 안 되면 모든 노력이 무화되어 버릴 수 있는 건강보험공단 관련 서류작업을 하면서, 과학적이고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꼼꼼히 서류작업을 준비하고 끝내 보험 승인을 받아내신 걸 보니, 이분들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녕 환자들은 모르겠지만….

발표를 위해 며칠 밤을 새워 준비하셨을 파일도 선뜻 메일로 보내주신다고 한다. 발표용 파일을 하나 만들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사소한 디자인을 하나 수정하기 위해서 마우스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클릭을 해야 했던가! 어느 페이지에 들어갔으면 싶은,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림 하나를 찾기 위해서 구글 이미지를 얼마나 뒤져야 했던가! 내용도 내용이지만, 표 만들고 그림 그리는 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파일을 누군가가 내게 달라고 하면 솔직히 마음속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던데…, ‘너는 고생 안 하고 공짜로 먹으려 하다니!’라는 속 좁은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서로서로 메일을 보내주고 자료를 공유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으셨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공부라는 게, 내가 환자를 본다는 게, 결국 나 혼자 힘만으로는 결코 잘 굴러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어도, 온전히 나의 것이 되지 않아도, 환자를 위해 의논하고 노력을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멋지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번 학회에서 좋은 걸 얻었다.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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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수현은, 이화여대에서 자연과학의 기본인 물리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인 사회학을 공부했다. 의료사회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나, 응용과학의 첨단인 의학을 ‘직접’ 공부하고 싶어서 연세의대에 편입하여 4년만에 ‘쾌속’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삼성서울병원을 거쳐 지금은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다. 여전히 남편은 물론 딸 슬기에게도 별로 신경을 못 쓰는, 친정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고는 생활이 안 되는 30대 아줌마다.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배운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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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엄마] 학회에서 ‘꼼수’를 나누는 교수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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