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우수상 유동욱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초지리, 대월보건지소)

어느덧 가을이 겨울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어디론가 쓸고 간다. 뜨거운 햇살을 밑천으로 한때 무성했던 수목들이 바랜 사진장 같은 잎새들을 흔들고 있다. 멀리 산야엔 저마다의 세월로 녹이 슨, 연한 갈색의 잎들이 아른거린다.

푸드덕 새가 떠나고 홀로 남은 가지 밑으로 푸석한 나뭇잎이 힘없이 떨어진다. 생로병사라고 했던가. 겨울을 죽음의 계절이라 한다면 가을은 늙고 병든 계절일 게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그윽하고 맑은 낙엽 내음이 상가(喪家)의 선향(線香)마냥 경건하기조차 하다. 어쩌면 낙엽 진 거리를 함부로 바스락거리며 거니는 나의 젊음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불경스러운 건 아닐는지. 그러나 조락의 계절, 낱낱이 지는 무수한 잎새의 사연이야 어찌 다 알겠냐마는 가을은 그 변두리 어디를 들춰보아도 아름답기만 하다. 형형색색 생동하는 봄날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 늙고 병든 계절의 아름다움은 도무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황씨 노인 집으로 방문 진료를 나가게 된 것은 몇 주 전부터다. 사실 그와 처음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은 그보다 오래된 일이나 이전에 그는 내게 괴팍스러운 환자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공중보건의로 지원한 나는 무의촌 지소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다. 농촌에서의 전원적이고 서정적인 생활을 꿈꾸었던 것인데 막상 와보니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낙후되고 노후한 지역이다 보니 인심은 오히려 야박하고 주민성은 거칠기조차 한 것이다. 게다가 낮이면 근방 공장굴뚝 연기에, 밤이면 주민들이 몰래 쓰레기를 소각하는 바람에 이곳은 도시보다 공기오염이 심각할 정도다.

여느 농촌이 그러하듯 주민의 대부분은 노인이다. 바로 나를 찾아오는 대다수의 환자들이 이들인데 처음엔 성심성의껏 환자를 진료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몇몇 환자들이 지나치게 자주 지소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약을 무료로 처방ㆍ조제해주다보니 그에 관한 심상찮은 폐해도 생겼던 것이다. 지나친 약물의존으로 약물 중독이 되는가 하면 약 욕심에 수북이 약을 쌓아 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심지어는 그렇게 모아 놓은 약을 파는 노인도 있었다. 진료에 관한 개념 역시 부족해 지척의 거리에서 손자나 며느리에게 약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환자 관리에 보다 분명한 정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하여 모든 환자가 지소로 방문할 것을 권고하였고 보다 면밀한 진료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내 주요업무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 병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되어버렸다. 황씨 노인은 그 무렵 나를 방문한 환자다. 마르고 거친 피부에 짧고 굵은 목, 우락부락한 얼굴이 노인임에도 험상궂은 인상을 풍겼다. 진료실을 들어서는 그는 무슨 까닭인지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아마 그는 전처럼 쉽게 약을 타 갈 수 없다는 소문을 익히 듣고 왔으리라. 진료를 받고 나갈 차례였지만 그는 잠시 주춤하였다. 다른 사람의 약도 타 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예상은 적중한 것이었다. 현 방침 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지시키자 그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근간에 자주 부딪히는 일이기도 하여 인내심을 갖고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몇 십 분이 지나서야 그는 겨우 체념하는 듯했다. 진료실을 나와 대기실에서 약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한동안 이기죽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실에서 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홉뜬 눈으로 나를 위협적으로 노려보더니 나중엔 심한 욕설까지 퍼붓는 게 아닌가. 갑작스런 소란에 놀란 직원들이 달려 나와 그를 만류하였지만 지소를 떠날 때까지 욕설은 멈춰지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말문이 막혀 직원들 보기 면괴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지원까지 하여 이런 모욕을 감수해야하는지 심각한 회의가 들었다. 근처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성정 급한 그는 젊어서 주색과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하고한날 싸움질에 만취한 날이면 집안 물건을 부수고 마누라를 때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부당한 모욕감에 며칠이 지나도 덴덕스러운 감정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꼬박 지나자 그는 다시 지소를 찾아왔다. 접수를 마치자마자 순서도 없이 진료실로 들어오더니 내게 반말을 하며 다짜고짜 약부터 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연세가 지긋한 어른이라도 그러한 언행은 상당히 불쾌하였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가다듬으며 진료 받을 것을 권하였고 침착히 문진을 시작하였다. 마지못해 건성으로 답을 하던 그에게 주기적으로 처방하는 혈압 약을 처방하고 나자 이번엔 그가 배꼽을 짚으며 아프다는 것이다. 배가 아프니 소화제를 달라는 것인데 이래저래 진찰을 해보자 꾀병이란 사실이 금세 탄로 났다. 그는 이번엔 아예 노골적으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 소화제가 필요한 듯 했으나 한껏 예민해진 나로서도 그에게 지고 싶어지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거센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고 오래잖아 다시 내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시뻘게진 얼굴로 ‘젊은 놈’을 운운해가며 ‘싸가지가 없다’는 둥, ‘아래 위가 없다’고 다그치더니 나중에는 애먼 부모까지 들먹이는 게 아닌가. 참다 못 한 나 역시 언성을 높이고 맞대응하고 말았다. 순간 진료실이 아수라장이 되었고 놀란 직원들이 그와 나를 떼어놓았다. 두 번 다시 그가 지소를 찾지 못하게 하겠다는 내 암중에 깔린 계산도 있었으리라마는. 이후 그는 지소를 찾지 않았다.

진료시간은 오후 여섯 시까지지만 다섯 시 이후엔 환자가 없는 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지소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한가로이 걸어 다니곤 한다. 학교 담벼락 은행나무가 아이들 웃음마냥 환하게 물들어갈 무렵 그날도 학교 운동장을 걷고 있었다. 골목 저편 어귀에서 한 노인이 수레를 끌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 반 학교 담벼락 넘어 석양이 새하얀 구름에 보랏빛을 덧칠하고 있었다. 함부로 쳐다볼 수 없던 태양도 이쯤이면 눈앞에서 윤곽을 드러내곤 한다. 갈수록 기우는 해는 떨어지는 조도만큼 다채로운 빛으로 하늘을 물들인다.

하루치 빛이 마감하는 순간 노을은 그 아름다움에 절정을 이룰 것이다. 덜커덩거리며 수레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선 담벼락 아래로 구부정한 허리에 시든 살갗, 얼굴 가득 검버섯 피어오르는 노파가 푸석한 낙엽처럼 수레에 담겨 지소를 향해 실려 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수레를 끄는 노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씨 노인이었다. 다행이 그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미안함과 당혹스러움이 먼저 가슴을 강타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파를 위해 약을 타가려던 그를 무턱대고 내가 의심부터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두 노인의 몸짓, 몹시도 아름다웠던 두 노인의 눈망울이다. 뒤뚱거리며 못내 뒤를 흘깃거리는 그와 미안한 표정을 감추는 듯 노파의 얼굴. 가끔씩 마주치는 두 노인의 눈망울에는 맞은 편 붉게 번지는 노을의 처절한 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젊은 연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눈물겨운 그 어떠한 아름다움이 서려있었다. 노부부는 5리가 넘는 길을 그렇게 왔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연민이라고 부르고 싶다. 비포장 시골 길 위로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도 낙엽은 쓸쓸히 겨울을 향해 몰려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을은 찾아오리라. 늙고 병든 아내를 바라보던 남편과 이제는 자신의 병 수발을 드는 늙어버린 탕아를 올려다보던 아내. 그렇게 서로를 연민하지 않을 수 없는 황혼의 그들을 나 역시 참회와 반성으로 연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랑하되 연민하지 말라’는 어느 유명한 철학자의 말을 신봉하지 않으련다. 연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몸통 위에’ 오롯이 단풍든 노부부가 이제 내게 더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인 것은 그들이 한없이 약한 존재이기 때문임을. 고즈넉이 잎새가 가지를 떠나는 이 계절의 미학 역시. 며칠 전 황씨 노인이 가져다준 단감이 수줍게 익어가고 있다. ■

‘잔인하게~몸통 위에’: 기형도의 시 <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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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수상자 당선 소감


유동욱(경기도 이천시 대월보건지소)

연어가 돌아오는 이유는

모두가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망망한 대해를 향해 일단의 고기 떼가 헤엄쳐나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연어 떼. 부드럽게 감쳐오는 담수모천을 뒤로 하고 따끔따끔한 소금물 거센 파도에 몸을 던진다. 바다는 단지 짜디짠 물 덩어리일 뿐, 사실에 때늦은 후회를 할지언정 막 강물을 벗어나는 연어 떼 그 날렵한 지느러미의 활개를 기억한다.

훈련소에서 풀려나자마자 배치 받은 근무지는 바다였다. 나는 한동안 바다에서 살았다. 너울거리는 파도 위에 철판 한 장 깔고 앉아 막 잡아 올린 한치며 오징어, 고등어를 회쳐 먹던 날이 엊그제만 같다. 내겐 이십대에 풀어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명분 없는 방황이든 미련스러운 미련이든. 3년이란 시간이 저물어가고 있다. 다시 몸을 추슬러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상류를 거슬러 회유하는 연어는 어떤 일을 겪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산문을 써본 적이 없어 생경한 문장들로 점철된 글을 읽으셨을 심사위원께 송구스럽고 민망하다. 주시는 상금은 감사히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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