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초기 위상 확보가 노조 성패 가를 듯…조합원 수도 중요

병원계 대립·전공의 관심 확보·귀족노조 인식탈피 등 ‘산넘어 산’


전공의노조가 전공의들을 대표할 수 있을지,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할지에 대해 의료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2004년 의사결의대회 식전행사로 진행된 전공의 노조 준비위원회 출범식 직전의 모습.

전공의는 병원에서 일정기간을 근무하는 일종의 계약직 근로자인 동시에 현장실습 등을 통해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라는 미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때문에 전공의들의 노조설립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실제로 전공의노조 설립은 대전협 초기부터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병원계의 반대, 전공의 조직의 취약함, 전문의시험과 관련된 오랜 유급휴가 문제 등으로 인해 추진력을 갖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 의쟁투 이후 전공의들의 입지가 점차 확대되면서 전공의노조 출범은 점차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가 되었으며, 전공의들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겠지만 최근 실시된 의협회장 선거에서는 8명의 후보자 모두가 전공의노조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설립을 위한 대전협 측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고 있다. 대전협은 지난달 말 조성현 정책이사 겸 대변인을 노조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변호사, 교수, 노무사 등으로 구성된 노조자문위원회를 열어 전공의노조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지난 6일 전국전공의노동조합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 조성현 위원장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는 5월 중순에 개최할 대한전공의협의회 대의원총회에서 ‘대한전공의노동자조합(가칭, 이하 전공의노조)’을 발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은 현재 준비위원회의 구조와 같이 위원장, 부위원장과 국장급 인사 두 명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실무는 전공의들이 수련을 받아야 한다는 특성상, 현재 대전협이 운영되는 제도와 같이 임원진은 전공의들로, 실무는 상근 사무직 직원들을 통해 진행할 방침이다.

조 위원장은 노조 설립 초기에는 대전협과의 협조를 통해 노조가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노조는 대전협이 모체가 돼 출발하지만, 산하 단체가 아닌 대등한 병렬구조로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노조 출범 이후 당분간은 대전협을 통해 사업이 진행되겠지만, 향후 자금 등 (이중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1~2년 후 정도에 노조가 자리를 잡게 되면 대전협을 해체해 노조가 안고 갈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전공의노조가 등록되고 난 5월 중순경에 발표될 예정이다.

일선 전공의들은 ‘무덤덤’

이처럼 현재 전공의노조에 대한 기본적인 청사진은 그려진 상태. 하지만 앞으로 노조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병원계, 교수, 일반 전공의 및 대전협 관계자들의 일관된 예측이다.

우선 기타 산업군의 노조와 같이 노조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사인데,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본지가 지난달에 실시한 설문조사(제311호, ‘의심만만’ 참조)에서는 전체 의사들의 78.9%, 전공의들의 83%가 전공의노조 설립에 ‘원칙적으로 찬성’한 바 있다.

그러나 노조가 생길 경우 실제로 가입할 전공의들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따라서 설립 초기에 가입 전공의들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전공의노조는 설립 이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있다.

전공의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는 지방의 한 전공의는 “노조는 전공의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중소병원 등에서는 아직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전공의들이 적지 않지만, 이들의 처우는 수년간 변한 게 없다”고 노조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전공의들은 노조 가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 지역의 주요 대학병원의 전공의들은 노조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림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전공의는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전공의노조 결성에 대해 접했으나, 별도로 설명회 등을 들은 바도 없고 특별히 생각해 본 적도 없다”며 “주변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아, 향후 병원 전체적인 상황을 돌아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지역의 또다른 대학병원의 모 전공의는 노조 설립의 당위성이 약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매스컴을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노조 설립의 초점이 ‘처우개선’에 맞춰져 있는데, 현재 크게 불편한 바도 없고 최근 병원에서도 전공의들과의 협의를 통해 많은 것을 개선해 주겠다고 밝히고 있어, 노조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전공의 노조 설립에 있어 노조설립위원회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모든 전공의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크지 않다. 또한 일반적인 노동자와 달리 일정 기간만 병원에 근무하게 되는 전공의들은 ‘평생 근무할 곳도 아닌데 굳이 트러블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몇몇 대학병원에서는 대다수 전공의들이 전공의노조 설립 및 가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대전협 집행부에 속해 있던 한 전공의는 대전협의 전공의노조 설립 발표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행부를 사퇴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전공의노조의 성패는 설립 초기에 얼마나 확실히 자리를 잡느냐에 달려 있으며, 자칫하면 설립만 하고 유야무야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노조, 과도한 근무시간 단축해야 병원계, 4년차 유급휴가 없애라

이와 함께 병원협회 등 병원계와 전공의노조 사이의 문제 중 가장 첨예하게 대립될 것으로 지적되는 것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문제.

병원 입장에서는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단축할 경우 발생할 공백을 메우려면, 전문의들을 쓸 수밖에 없다. 이는 병원들의 재정적으로 부담을 줄 수밖에 없어 병원계는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전공의들의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 당연히 업무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공백을 메우려면 기존의 ‘저렴한’ 전공의 인력 대신 ‘값비싼’ 전문의를 더 채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병원의 부담을 크게 높이므로, 최근 재정악화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소 수련병원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가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노조 측에서도 이는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사안. 얼마 전 본지에서 조사한 바에서도 노조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으로 꼽힌 것이 ‘적정한 수준으로 근무시간 단축’이었다. 전공의들의 대답만을 분석했을 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노조 설립이 형식적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전공의들을 대변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공의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결과를 도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때문에 전공의노조 준비위원회 조성현 위원장도 전공의들의 현실적인 수련환경 개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전공의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부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에는 교육시간이 포함돼 있다며, 근무시간을 줄인 만큼 교육기간도 연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4년차들의 유급휴가 등의 관행도 없애고 규정대로 수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조성현 위원장은 “우리가 바라는 근무시간 단축은 합법적인, 누구나가 인정할만한 수준의 요구”라며 “근무시간을 줄인다고 교육기간을 연장해야한다는 주장은 결국 관행으로 진행되어 왔던 불법적인 기준을 인정하는 것으로 논리에 어긋난다”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노조가 결성된다면 무엇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원만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파업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또한 현재 병원협회에서 마련한 수련평가기준에서의 교육기간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양측의 주장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지만 하지만 실제 전공의들의 수련 교육시간을 측정하기는 애매한 상황.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육수련부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현재 수련교육기간에서 근무와 교육시간을 별도로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현재 컨퍼런스나 진료 준비도 근무시간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별도의 시간을 줄여 근로기준법에 맞는 교육시간, 근무시간으로 잡는 것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각 과의 교육 방침이나 특성이 다른데, 각각의 과에 맞게 시간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양측 간 협의를 진행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이나, 각 단체 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게 결론이 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전공의노조 파업 있어서는 안될 일”

이와 함께 제기되는 우려는 전공의노조가 행사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

지금까지 많은 병원들이 강성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은 바 있어, 일반 사무직과 달리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파업에 대한 파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니, 병원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

전공의노조 측도 인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쉽사리 파업카드를 꺼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초기 병원계가 강경한 자세를 보이며 주요 쟁점에 대한 협상이 결렬된다면, 최악의 경우 파업을 단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서울 모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병원 노조라고 하면 강성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일반 사무직원노조가 아닌 전공의, 즉 의사들이 파업을 강행할 경우 대내외적인 병원 이미지는 물론 진료에 커다란 공백이 생기게 되고, 또한 환자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파장은 일반 노조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며 향후 전공의노조가 확산될 경우, 파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실질적으로 전공의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부 교수들도 이같은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려대병원의 모 교수는 “처우 개선을 위한 전공의 노조 설립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실제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입장을 고려할 때, 병원 측에서는 전공의 노조의 파업을 쉽게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전공의 노조설립이 굳어진 상황인 만큼,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전공의와 병원 양측이 원만하게 이를 조율할 수 있는 대화창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양대병원의 한 교수 역시 “개인적으로는 전공의 노조 설립이 언젠가는 가야 할 사항이고, 또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현실적으로 시기상조이며, 의약분업 때 의사들이 파업하면서 진료에 차질을 빚은 것처럼, 전공의 노조가 파업을 하게 된다면 병원의 진료 공백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파업에 있어서의 우려를 나타냈다.

이밖에 서울 시내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노조 가입에 여부에 대해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만큼,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가입을 막는 병원도 생기게 될 것”이라면서 그 방법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귀족노조’ 비판 여론에 제1정책 바꿔

이밖에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전공의노조는 언론을 통해 ‘귀족노조’라는 타이틀을 받은 바 있어, 대외적 행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귀족노조 타이틀이 붙은 기사에는 네티즌들의 비판도 적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 전공의노조 준비위원회측은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전공의들이 2,000만원대의 연봉을 받으며 주당 100시간 이상을 근무해야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지속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비판을 의식, 전공의노조는 최근 노조설립에 있어 첫 번째로 내세웠던 정책을 ‘전공의 처우개선’에서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선 및 환자의 건강권 확보’로 바꾸기도 했다.

이밖에도 ‘노동자 조합’, 즉 노조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전공의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법적으로 노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명칭을 노동조합으로 명시하도록 규정돼 있어, 준비위원회 측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편, 전공의노조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향후 병협 등 병원계와 대화를 통해 원만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대한의학회가 나서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의학회에 몸담기도 했으며, 현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 의대 교수는 “신임회장 후보 당선자가 전공의를 지원하기로 밝힌 바, 전공의와도 밀접하고 병원과도 떼어낼 수 없는 의학회가 양쪽을 중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의학회 한 관계자는 이같은 의견에 대해, “의학회는 학술단체이며,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답변을 함으로써, 적어도 아직은 중재에 나설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

박기택 기자 pkt77@fromdoc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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