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학을 공부할 때 나 스스로에게 요구했던 사고방식은 세상에는 ‘take it for granted that’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질서가 있으므로, 그 질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당연시하는 것을 조금은 다르게 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훈련할 수 있는 사고방식은 매우 다양한데, 나는 왜 하필 이런 방식에 호감을 갖고 몰입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이 당연시되는가, 왜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는가, 그것이 당연시됨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그런 문제들에 나는 천착했었다.
그러나 의사가 된 후 나는 일단 잠정적으로 ‘take it for granted that’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하였다. 의학이라는 학문세계 내에는 반복된 실험과 임상적 경험을 통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축적된 지식의 양이 심히 막강하여, 환자의 생명을 앞에 두고 있는 나로서는 이에 저항할 수 없었다. 비판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에 앞서 당연히 여겨지는 기본 지식을 숙지하기에도 빠듯했고(사실 그것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용감무쌍하게 기존의 질서와 기존의 체계를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장을 정한 후 나는 매트릭스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었고, 어쩌면 그것은 바로 내가 ‘의사’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30대가 시작되었었다.
내가 ‘의사’가 된 증거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갖고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 친절한(?) 편집장님이 나의 ‘인턴시절’ 수기를 ‘시즌1’으로, 레지던트 시절을 ‘시즌2’로, 그리고 잠시의 공백기 후 다시 시작한 강사 시절의 슬기엄마 일기를 ‘시즌3’로 명명해 주셨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 나는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병동에서 몸부림치면서, 밤에 당직을 서면서, 혹은 오프인데도 집에 못 가고 병원에 남아 있다가 응급환자 피검사가 나오는 걸 기다리면서, 내 마음속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뭔가를 담아내는 글을 썼다. 30분이면 한 편 정도는 후딱 쓸 수 있었다. 분노, 절망, 희망, 감동, 그리고 사랑이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나에게 다가오고 소재기 넘쳐났기 때문에, 나는 흥분을 조금만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차분히 하면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누구도 무서울 게 없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글쓰기는 나의 뭔가를 표상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스스로 검열의 시각이 강해졌다. 글을 쓰면서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검열하는 과정이지만, 나는 점점 그 긴장을 견디기 어려웠고, 4년차가 되어 종양내과를 지원한 후 훨씬 많아진 업무와 과중하게 부여되는 책임감, 그런 것들로 인해 내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에도 관심을 갖기 싫어졌다. 그래서 3년여 동안 계속해 오던 글쓰기를 종료하기로 하였다. 시즌2는 그렇게 마감되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글쓰기를 중단해도 나의 일상은 물론 매우 바빴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여유는 없었고, 누가 부추기지도 않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 6월, 아무리 봐도 기분 나쁘게 생긴 직장 용종이 나에게 발견되어, 정확히 진단이 안 된 채 수일을 긴장과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 하고 싶은 얘기가 쌓여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서서히 그런 응어리들이 분출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종양내과 의사로 매일 만나온 암환자와 암이라는 병, 그들의 실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나 보다. 시즌1, 2에서 특별히 정해진 주제 없이 용감하게 이 주제 저 주제를 건드리며 글을 썼던 것과는 달리, 시즌3에서는 암과 암환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들이 나의 모든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1년간 의도적으로 암을 주제로, 암환자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였다.
아직 시니어(senior) 의사도 아닌데 매주 신문에 칼럼을 쓰고, 학술적이지 않은 주제로 책을 내는 나의 행위는 다소 산만한 것으로, 최소한 대학병원에서는 의사로서의 삶에 집중성이 떨어지는 행동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 쓴 글인데도 지금 다시 보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썼구나, 적절한 표현이 아니구나 하는 한계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걸 보면, 나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완전히 오해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시즌3을 끝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사고의 계기, 내 인생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내부를 외부로 표출하기보다는 침잠하여 잠수함을 타고 내부적인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즌3을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분간은 전문가다운 종양내과 의사로 환자를 진료하는 데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려 한다. 그것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수시로 절감한다.
내가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의학으로 방향을 바꾸던 그 길 어느 모퉁이에 분명히 있었던, 아직은 모호한 채 남아 있는 나의 관심사들, 암환자들의 삶의 질, 암 생존자들의 정체성, 종말기 의료와 호스피스 등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의료의 영역이면서도 사회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이 병행되는 것이 요구되는 지점들이다. 그런 주제들은 아직 내 삶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 채 가슴속에만 숨겨져 있다. 내가 뭘 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시에서 발견한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그것이 당신이 할 일이라면 그 일에 흥미를 잃지 않기를. 시간에 따라 운은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당신의 천직이 될 것이니’라는 문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잠시 몸을 웅크려 현재와 미래를 준비해보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될 때, 혹은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겨날 때, ‘시즌4’를 다시 시작해 보리라 약속한다. 그동안 나의 글에 여러모로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