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부러우면 닮는 거다]

박상은(샘병원 의료원장)


“봉정표 교수가요? 그럴 리가요, 하하. 제가 봉 교수를 부러워한 적은 있지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절 좀 부러워해줬으면 하는 건 있어요. 새로 시작한 것이 있어서….”

봉정표 교수가 다음 인터뷰이로 지목한 박상은 원장의 말이다. 사람들이 좀 부러워해줬으면 하는 일이라면 부러워할 여지가 없는 일일 가능성이 더 많을 터. 박 원장이 새로 시작한 것은 2007년 정식 출범한 ‘아프리카 미래재단’의 일이다.

1년에 서너 번, 23시간 비행 끝에 도착하는 아프리카에 그는 요즘 푹 빠져 있다. 박 원장의 아프리카는 내전과 기아에 시달리고 무더위와 불결한 환경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더없이 깨끗한 자연과 순박하고 영리한 사람들로 즐거운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 미래재단은 짐바브웨 수도인 하라레에 본부를 둔 구호재단이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간호대, 의대 등을 설립해 아프리카 사람들 스스로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짐바브웨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말라위 등에서도 사업을 진행한다.

원장실 한쪽에 말라위에 있는 병원에서 고장 났다며 보내온 내시경이 있었다. 10월 쯤 말라위에 들어갈 때 직접 가져갈 생각이란다.

“이번 10월 15일에 간호대가 개교하고, 의대 기공식도 해요. 9월부터 3년간 코이카에서 지원받은 15억 원에 우리 재단 펀드를 합해서 마련한 21억 원으로 말라위 에이즈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중고등학생들에게 포경수술을 하면 에이즈 예방에 효과적이거든요. 우리가 해외 여행할 때 빈곤퇴치기금을 내잖아요, 15억이면 150만 명이 도와준 거니까 소중하게 써야죠.”

이 외에도 말라위 의사들과 한국의사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도 추진 중이다. 진료봉사도 의미가 있지만 현지인들을 교육시켜 그들이 가난과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가 보면 우리가 너무 잘 살고, 혜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요. 지금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힘든 곳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걸맞은 사회제도를 갖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참 기분이 좋죠.”

봉정표 교수가 아무래도 멋진 아프리카의 모습을 알고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박 원장은 웃는다. 골프를 좋아하는 봉 교수가 사슴이 수시로 출몰하는 아프리카 천연 잔디골프장을 본다면 더 부러워할 것 같다고.

박 원장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생명윤리’ 때문이다. 그는 1994년부터 2년간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당시 국내에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생명윤리를 공부했다.

봉정표 교수가 ‘남들이 안하는 분야를 소신 있게 선택하는 용기’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당시 의료현장에서는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신경외과에서 한 달에 두 번씩 의료윤리 컨퍼런스가 열리고 교수가 내린 판단에 대해 간호사가 의문을 제기하고 레지던트가 의견을 피력하는 등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지는 분위기였다. 그 토론을 통해 병원내 생명윤리 규정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등 의료현장에서 생명윤리가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생명윤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5천명 쯤 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죠.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다행스러운 일이죠. 모든 연구에 의료윤리가 기본적으로 들어가니까요. 제가 유학 갔다 온 후 1997년에 복제 관련 이슈가 생겨서 한창 바빴지만 지금은 제대로 공부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해서 이 부분에서는 제가 할 역할을 다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즈음, 생명윤리의 4대 원칙인 자율성존중, 악행금지, 선행, 정의의 원칙 중에서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미국에서는 한 사람을 좀 더 오래 살도록 하기 위해 수십억에 달하는 치료비를 쓰고 그에 따른 생명윤리를 논하는데, 아프리카에서는 같은 돈으로 수백 명에 달하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옳고 그르다고 결론 낼 수는 없다.

“지구촌 잣대에서 정의의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2006년부터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이제 5년째네요. 대서양을 건너는 것도 호수 하나 지나는 느낌으로 다녀요. 제게 아프리카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으로 기억되는 곳이죠. 미래재단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인 거예요.”

인턴 시절 조산원에서 낙태시술을 받다가 내장까지 다치는 사고를 당한 한 젊은 여성을 보고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남들이 한창 일하는 시기에 내과의사로서의 경력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를 하겠다며 2년을 바쳤고, 그로 인해 아프리카를 만났다. 이 만남은 박 원장을 어디로 이끌게 될까.

남들이 나를 좀 부러워했으면 좋겠다는 농담으로 시작한 인터뷰였지만 박 원장은 지금까지 했던 선택을 ‘마이웨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대학에 있을 때 대전에 모임이 있어서 차를 몰고 가는데 대구 쯤 와서 차 한 대가 저를 따라잡더라고요. 다시 앞지르겠다고 열심히 가속기를 밟아서 유성온천 쯤 와서 따라잡았어요. 그런데 환호를 지르는 순간 대전 톨게이트를 지나 버렸어요. 서울 가는 차를 대전 가는 차가 앞선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통행료도 더 들고 지각도 하고, 고생했죠. 그 때 깨달았어요.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가야겠구나, 하고.”

순간의 깨달음, 오랜 실천. 박 원장의 마이웨이에 대한 적절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박상은 원장이 부러운 사람은?

전우택(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정신과학교실)

“제가 부러운 사람은 아끼는 후배이기도 하지만 친구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전우택 교수예요. 우선 정신과 의사인 것이 부러워요, 하하.

저는 정신과가 사람들 만나서 대화 나누고 얘기 들어주고 상담 분석하면서 치료하는 과라고 생각하고 정신과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의대 실습 때 정신과를 돌면서 약물 용법을 위주로 하는 것을 보고 그 꿈을 접었어요.

아마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봐야 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걸 보고 오히려 내과를 하면 환자들하고 더 많이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쉬워요. 정신과를 했으면 환자와 내면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얘기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게다가 전 교수는 사회정신의학을 했거든요.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병리, 사회가 가진 정신적인 문제점 등을 연구하죠. 최근 이 친구가 가장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남북의 정신적 통일이라서 탈북자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체제의 통일이 아니라 사람의 통일을 생각해야 한다며 사회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어요.

통일, 북한의 정신적 문제, 이런 고민들을 의학자로서 잘 다루고 있어서 부러워요. 부학장을 맡아서 좀 바쁘긴 할 텐데, 그래도 제가 얘기했다고 하면 시간 내 줄걸요? 하하.”

글, 사진 김민아 기자licomina@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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