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유지영] 김남호(원광의대 순환기내과) 교수


“원광대병원,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날개 달았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고, 거북이는 날았다. 사립대병원이 국립대병원과 공개경쟁을 벌여 이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립대병원이 국립대병원을 제치고 대형 국책사업을 따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북지역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사업 시행자로 원광대병원을 선정했다. 복지부는 사업 시행 첫 해인 지난 2010년에 시설과 장비지원금으로 원광대병원에 57억원을 지원했다. 복지부는 또 오는 2015년까지 향후 5년 동안 매년 12억원씩 모두 60억원을 운영사업비로 지원할 계획이다.

원광대병원은 정부 지원금에 병원 자부담금 59억원을 보태 총 116억원으로 지난 1년 동안 심뇌혈관질환센터를 준비했다. 3층 규모의 병동을 증축했고, 심장집중치료실(CCU)과 뇌졸중집중치료실(stroke unit) 등 기존 병상을 개축했다. 로봇재활치료기(Robotic Device)를 비롯해 신규 장비 구입에만 87억원을 투입했다.

순환기내과는 물론 신경과, 재활의학과 전문의 각 2명씩 6명을 새로이 채용해 인력을 기존의 2배로 대폭 늘렸다.

센터를 총괄 담당하고 있는 김남호(순환기내과) 센터장은 “최근 전문의료기관의 수도권 편중이 심화되면서 수도권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은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4월 문을 연 전북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는 지역사회 심뇌혈관질환 관리의 중추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지역 심뇌혈관질환의 야전 사령탑”

최근 우리나라는 심근경색증과 뇌졸중으로 대표되는 심뇌혈관질환의 발생률과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말 기준으로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전체 사망원인의 2위·3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뇌혈관질환에 따른 사망률은 26.1%로 암(28%)에 이어 한국인의 중요한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복지부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고, 조기진단, 치료와 재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은 적극적인 예방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초기 대응이 강조된다. 특히 심뇌혈관질환은 의학적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어 환자와 가족, 지역사회 등에 미치는 손실이 크다.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하부기관으로 심혈관센터와 뇌혈관센터, 심뇌재활센터, 예방관리센터를 두고 있는 이유다. 특히 이 가운데 예방관리센터는 치료에만 머물지 않고, 심뇌혈관질환 환자와 보호자, 지역사회 개원의, 보건소 등을 대상으로 교육과 사후 관리를 담당한다.

원광대병원이 위치하고 있는 익산시의 인구는 30만명이다. 전북의 최대인 도시 전주의 인구가 60만, 익산과 30분 거리에 위치한 군산의 인구는 30만명에 이른다.

서남해안권에 속하는 충남 서천의 경우 대전보다는 익산과의 접근성이 더 좋다. 전북대가 있는 전주를 제외하고 원광대 심뇌혈관질환센터의 의료권역에는 대략 120만명의 인구가 있는 셈이다.

김남호 센터장은 “센터가 기존 심뇌혈관병원과 다른 것은 예방관리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담 부서를 만들어 지역사회 재활로 이어지도록 포괄적인 체계를 부여한 것”이라며 “의료권역은 환자쏠림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동반자입장에서 지역사회 교육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병원도 공공의료를 한다”

복지부의 이번 국책사업은 사업 시행자로 선정된 병원의 자부담금을 포함해 202억원에 이르는 대형 규모다. 국가가 사업 추진에 필요한 예산의 70%의 돈을 준다. 사업권을 따기 위한 경쟁은 그만큼 치열했다.

원광대병원은 사업권을 두고 전북지역 국립대병원과 각축전을 벌였다. 사업 발표회장에선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경쟁은 치열했다.

심뇌혈관질환센터 운영에는 자신할 수 있었다. 원광대학교는 지난 1980년 의과대학 인가를 받고, 이리종합병원을 인수해 출발했다.

그동안 심도자술과 관상동맥조영술을 전북 최초로 1987년에 시행했고, 호남지역 최초 뇌경색 우회로 수술 성공(1996년), 지방 최초 심장이식 수술 성공(2000년), 뇌졸중 초음파 혈전 용해술 성공(2005년) 등 뛰어난 심뇌혈관질환 치료성과를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은 있었다. 국책사업을 수주하려는 ‘사립대학’은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했고, 현실의 벽이었다. 그것은 국책사업자 선정을 추진하는 담당 공무원들의 선입견이기도 했고, ‘지방’사립대학의 패배감이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국가의 공공의료사업에 수익성을 우선 내세우는 사립대병원이 나서는 것이 맞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암센터와 노인병센터, 임상센터 등 정부가 추진하는 굵직한 국책사업은 국립대병원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지방사립대병원은 서울권(중앙) 메이저 사립대병원과는 형편이 또 달랐다. 지방이었다.

복지부는 이번 권역심뇌혈관센터 사업자 선정을 지난 2008년부터 시작했다. 2008~2010년까지 매년 3개 병원을 선정, 전국 9개 권역에 권역심뇌혈관센터를 설립·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2008년 첫해에는 강원대학교병원과 제주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3개 병원이 권역심뇌혈관센터 사업자로 선정됐다. 2009년에는 경상대병원과 전남대병원, 충북대병원이 선정됐고, 2010년에는 원광대병원을 비롯해 충남대병원, 동아대병원이 각각 선정됐다.

사업자 선정이 종료되는 마지막 해에 원광대병원을 포함한 사립대병원 두 곳이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번에 원광대병원이 같은 지역 국립대병원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고 사업자에 선정된 것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국립대에 국책사업이 몰리는 현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가 모험을 하듯 사립대병원에 대형 국책사업을 줬다는 후문도 있다.

김남호 센터장은 “처음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TF팀을 꾸리고 몇몇 공무원들을 만나봤을 때만해도 사립대병원에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과 불신을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TF팀, 한 달 동안 집을 잊었다”

원광대병원 TF팀은 지난 해 3월 꾸려졌다. 병원장이 TF팀장을 직접 맡았다. 원광대병원이 이번 프로젝트에 임하는 각오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등 관련 진료과목에서 TF팀원 10명이 차출됐다.

김남호 센터장은 “4월 최종 사업계획서 제출을 앞두고는 마라톤 회의가 1개월 동안 이어졌다. 회의는 매일 수시로 열렸다. 밤샘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달 동안 귀가시간은 11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증빙서류는 턱없이 부족했다. 30년 동안 자매병원이었던 병원과의 증빙서류가 없는 황당한 일이 있기도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환자들에게 교육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진이라든지 자료를 남기지도 않았다. 시민들을 위한 건강강좌와 환자교육도 관례적으로 해왔지, 증비서류로 제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김 센터장은 그래도 TF팀의 호흡이 잘 맞았던 것도 한몫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 TF팀은 1년 전에 꾸려졌다. 지난 2009년 이 사업을 두고 전남대와 조선대, 전북대와 경합을 벌였고, 고배를 마셨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와신상담한 결과가 막판 한 달 동안 뒷심을 발휘해 국립대병원을 누를 수 있었다.

김남호 센터장은 “원광대병원이 이번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운영하게 된 것은 사실상 처음 대형 국책사업을 수주한 것”이라며 “오랜 시간 준비하면서 팀원들끼리 지치기도 했지만, 이것을 해야 지역사회에서 이겨낼 수 있고 치고 나갈 수 있다는 결의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을 수주하는 노하우는 사업정책의 입안 취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며 “기안자의 취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물어보고 소통하는 노력이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이창호 객원기자 karmaw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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