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김정상] [인터뷰] 한국한의학연구원 최승훈 원장


본지는 지난 6월 창간 특집호에서 정부가 1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해 지난 200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한의약육성발전계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의학연구원(이하 한의학연)’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했다.

▲SCI 논문 20편 위해 연간 350억 써야 하나? ▲석박사 연구원 82명, 제대로 연구하고 있나? ▲발표논문의 목록조차 공개 안 하는 이유는 뭔가? ▲논문은 감소하는데 왜 연구비는 늘어나나? ▲유명무실 ‘중풍발병 예측프로그램’, 수십억 가치 있나? ▲인기없는 ‘사상체질분석기’, 수백억 가치 있나? ▲가짜 증명서 발급으로 검사기관 취소됐는데 왜 계속하나? ▲경영평가 매년 최하수준인데, 왜 아무 개선 없나? ▲1차 한의학육성계획 수립 및 집행한 기관이 평가까지 해도 되나? ▲이런 기관이 1조원 프로젝트 다시 주도해도 되나? 등의 의문을 제기하며 국책연구기관인 한의학연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봤다.<한국한의학연구원, 10가지 의문점에 답해야>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지난 8월 한의학연 원장으로 취임한 최승훈 원장에게 들어봤다.

Q. 신임 원장으로서 본지의 인터뷰 요청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 (인터뷰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한의학연 원장을 지원하기 위해서 자료를 검색하던 중 청년의사에서 제기한 의문들을 접하게 됐다.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청년의사에서 제기한) 그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한의학연은 기관 평가에서 흡족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혁신을 위한 자극이 됐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인 한의학연의 원장으로 응모하면서 경영혁신과 소신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견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

Q. 의료계는 한의학연이 한의사들을 대변하는 연구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 한의학 기반의 연구를 하다 보니 당연히 한의사를 위한 조직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우리 연구원은 한의사라는 특정 조직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한의학을 기반으로 국민보건을 증진시키는 기관이다. 좁게 보면 연구원들이 모두 주인이고, 넓게 봐서는 정부, 국민이 주인이다. 즉 한의학 연구를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자 설립된 연구기관이다.

연구원에 한의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의사는 정규직 기준으로 20여명 뿐이다. 의학, 약학, 수의학, 생물학, 전자공학이나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함께 다학제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한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이라는 것은) 선입견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얼마 전 한의계 언론사가 주최한 포럼에서 만난 한 한의계 인사는 “한의학연이 왜 한의사들을 위해 해 주는 것이 없냐”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의학연의 존재 목적은 국민 보건과 권익 향상이다.

Q. 최근 의협의 감사청구가 마무리됐다고 언급하셨지만, 감사원 확인 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 표현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취임한 다음날부터 사흘간 감사원에서 나와 한의학연을 감사했다. 명목은 민원에 대한 확인이었고, 큰 문제없이 마무리돼 그렇게 말한 것이다.

Q. 한의학연이 한의학육성법 전반에 걸쳐 관여했고, 또한 관련 정부 지원의 상당부분이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사실인가?

- 한의학연이 한의약육성법의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고 평가를 담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획은 복지부 산하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사회연구원과 함께 마련했다. ‘한의약육성발전 5개년 계획 수립’이라는 정책과제를 한의학연에서 맡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

발전 계획을 찬찬히 살펴보면 5년간 투자하기로 한 1조원은 교육과학기술부, 복지부, 농림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청, 각종 지방자치단체, 지자체의 한의학 관련된 연구기관, 민간단체 등에 제공되는 예산의 총액이다.

또한 이 금액의 총체적인 관리는 복지부에서 하고 있다. 한의학연은 심의위원회에 참석하고 있지만 사실상 거기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Q. 용역을 받아 진행한 한의약육성발전계획 중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됐다. 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 한의학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로 든 세 가지 근거는 인구의 고령화, 78년도 WHO의 대체의학 사용 권고,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및 투자였다.

인구의 고령화가 한의학을 육성시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을 거라는 지적은 급성기 질환보다 만성질환에서 한의학을 찾는 인구가 늘게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두 번째 78년도 WHO에서 대체의학 사용을 권고한 알마타 선언이다.

주류가 현대의학이라고 한다면 비주류 의학을 WHO에서 인정한 것이다. 거기에는 아프리카의 주술사도 포함돼 있지만 과학적인 노력을 통해서 가치 있는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시장과 국내시장을 비교한 데이터 범주 오류는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인다. 최근 WHO에서 표준 질병 분류에 전통의학을 포함시켰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확한 통계치를 계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Q. 한의학연에 투입된 연구비에 비해 그 성과가 저조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 한의학연은 1994년 처음 문을 연 이후 10여 년 동안 건물을 임대해서 운영돼오던 조그만 연구원이었다. 연구와 행정 인력 모두 합쳐서 30~40명 수준이었으며, 연간 예산 역시 50억원 안팎이어서 제대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예산이 일부 늘어나면서부터였다.

한의학연에서 진행하고 있는 R&D는 대부분 5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과제가 대부분이다. 성과가 바로 나오기 힘든 구조다. 기업이나 개인과 달리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연구를 하기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자원을 투입한다.

체질진단툴이나 동의보감유네스코 등재, 당뇨합병증치료후보물질개발, 비만치료 후보물질 개발, 다양한 침 효과 증명 등의 연구 성과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대개 연구과정에서 나오는 성과가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는 좋은 결과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또 출연연의 가장 큰 사업은 인프라 구축이다. 기업이나 개인과 달리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 연구하기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자원을 투입한다. 일종의 사회간접자본 같은 성격이다.

예를 들어 한의학의 대표 치료도구이면서 많은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는 침의 경우 오랫동안 그 규격이 제정되지 않았다. 한의학연에서는 침과 관련된 KS표준을 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침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한의학연이 하는 일이다.

연구 성과는 통상적인 정부출연연이 진행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된다. NTIS에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마다 실시하는 각종 평가와 과제마다 발간하는 각종 보고서, 기술이전설명회나 과학축전, 성과전시회, 견학 등의 각종 홍보 행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원의 연구 성과에 대해 알리고 있다.

Q. 연구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 성과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 연구 성과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만약에 공개를 하지 않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고의가 아니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저널에 논문을 내는 이유는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연구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지적은 내부에서도 나왔다. 이에 앞으로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연구 성과를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일부는 한의학연이 운영하고 있는 오아시스라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Q. SCI논문이 연간 20여편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 SCI와 SCI-E논문이 SCI급 논문으로 구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유는?

- 새로 부임하고 관련 내용에 대해 조사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적된 것과 달리 2010년도 SCI논문은 81건에 달했다. 이는 1인당 논문 수로 했을 때도 출연연 중에서 상위에 속한다.

또 SCI와 SCI-E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 내부적으로 SCI와 SCI-E급 논문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의학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도 있다.

한의학 분야에 가치 있는 연구를 진행해 하고자 하면 '임팩트 팩터'가 낮고, 성분을 분석하고 기전을 밝히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임팩트 팩터가 높게 나타난다. 특히 천연물 분야의 연구는 SCI-E급 저널이 SCI논문보다 임팩트 팩터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또 한의학 전통의학 저널들의 수가 현대의학에 비해 수가 적다는 어려움도 있다. 이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SCI와 SCI-E를 모두 국제적인 저널로 보고 크게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Q. 중풍발병예측프로그램, 사상체질분석기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은데?

- 중풍발병 예측프로그램, 사상체질분석기 등의 결과물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중풍발병예측프로그램은 2005년 교육과학기술부 특정연구개발 과제로 ‘뇌혈관질환의 한의학 변증지표 표준화 및 과학화 연구’의 연구 중 ‘뇌졸중의 역학적 연구와 예측모형 개발에 관한 연구’에 대한 성과다. 여기에만 투입된 예산은 1억4,000만원이었다.

사상 진단 툴도 비슷한 연구개발 과정을 통해 진행됐다. 한의학적 진단을 수치화해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다학제적인 연구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런 연구는 한의학뿐만 아니라 의학, 경영학, 생물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통해서 마련되고, 평가 또한 이 전문가들을 통해 받고 있다.

Q. 연구원에서 운영하는 검사기관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는데?

- 한의학연은 지난 2009년 수입한약재 검사기관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다. 당시 담당했던 직원이 행정절차상의 실수로 시험 검사서에 도장을 하루 일찍 찍은 것이 원인이 됐다고 보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한의학연은 한약재 품질 검사를 수행하고 있지 않다. 또 검사기관 지정 취소 후 관련 규정을 모두 폐지했다.

다만 현재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부분인 국내 한약재의 유해물질(중금속이나 잔류농약) 및 한약제조업소 등의 사전 품질 검사만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검사성적서 발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Q. 한의학연에 지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한의학연의 가장 큰 현안과제는 우수인력 확보라고 생각한다. 한의학연은 인지도가 높지 않다보니 우수한 인재 확보가 어렵고, 어렵사리 구한 인재들도 힘든 연구 환경으로 인해 쉽게 자리를 옮기곤 한다.

또 연구의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덕연구단지 내 출연연 가운데도 수리과학연구소를 제외하고는 예산, 인력이 꼴찌에 속한다. 이는 세계 각국의 전통의학 연구기관들과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크다.

중국에는 1955년에 개원한 정부 직속 중의과학원이 있다. 이곳은 산하에 중의기초이론연구소, 침구, 중약, 임상평가, 의사문헌, 정부 등 각 분야의 13개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으며, 6개 중의병원과 대학원, 출판사, 잡지사 등 학술부서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는 보건부의 NIH 산하에 1992년에 설립된 NCAAM(미국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라는 기관을 두고 운영되고 있으며, 한해에 투입되는 예산만도 3억 달러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한의학에 창조적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양의학이 한의학과도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이든 서양의학이든 국민보건에 기여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Q. 의계와 한의계가 협업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의계와 한의계의 협업은 대환영이다. 반드시 그렇게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학문간 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에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이다. 한의학은 한의학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서양의학은 서양의학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양 측은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진정한 협업이 진행될 수 있다.

지난주 우리 연구원에서는 경락(Primo, 프리모시스템)에 관해 물리학박사, 의학박사, 한의학박사, 수의학박사 등이 참석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이런 종류의 협력을 통해서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서양의학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는 것 같다. 또 한의학에서는 서양의학에 대해 피해의식이 있다.

이런 간극을 좁히고 연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양측이 모두 서로의 분야를 존중하고 융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고, 이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인간 친화적인 의료정신을 구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Q. 앞으로의 한의학연의 운영계획은?

- 한의학연은 수년 동안 양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이제는 질적인 성과를 낼 때가 됐다. 비전과 미션을 연구들과 일치시켜 연구의 중요도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 한다. 기존 연구들 중 중복돼 있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은 정리하고, 원천 기술 연구에 좀 더 집중토록 할 것이다.

최근 천연물 신약개발 붐과 관련해 정부에서도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우리 민족의 생생한 치료 기록인 한의학을 활용해 천연물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다. 천연물 신약은 처음부터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하는 선진국에 비해 오히려 유리한 부분일 수 있다.

김정상 기자 sang@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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