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박기택]

최근 국내 외국인 환자 증가, 병의원의 활발한 해외 진출 등을 거론하면서 의료 분야에서도 한류가 일고 있다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외국인이 지불한 의료비용 1억 달러 돌파’, ‘외국인 환자 11만명’, ‘러시아, 카자흐스탄, UAE로의 병원 진출’ 등을 근거로 의료 한류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 의료의 글로벌화가 시작된 것일까?

현행법상 국내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기관에 환자를 소개·유인·알선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는 예외다. 지난 2009년 1월 ‘외국인(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제외한다)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는 소개, 유인 등이 가능토록 의료법이 개정됐다. 외국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한국 의료서비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의료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복안이었다.

개정된 의료법에서는 또 외국인 환자를 유치코자 하는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령에 따른 요건을 갖춰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등록(매년 3월 말까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하도록 했다.

진흥원에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겠다고 등록한 의료기관은 2011년 12월 말 현재 2,093곳(전년 대비 15.4% 증가). 등록이 시작된 2009년 1,453곳에서 2010년 1,814곳으로 늘어난 데 이은,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전국 44곳 중 1곳을 제외한 43곳이 등록했다.

그렇다면 병의원, 특히 대형병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외국인 환자 유치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가 쉽지 않은 지역 병원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밑져야 본전이다. 시설 장비 투자에 대한 부담은 없는 반면, 등록은 쉽다. 여기에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도 의료기관의 등록을 유도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 등록기관을 희망하는 의료기관은 사업계획서와 의료기관개설허가증 등 기본적인 서류 외에 진료과목의 전문의 1인 이상이라는 점만 증명하면 된다. 다만 상급종합병원(종합전문요양기관)은 병상수의 5%를 초과해 외국인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의료법 27조 2의 5항). 의료기관으로서는 특별한 자격 요건 또는 시설이나 인력을 갖추지 않아도 등록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도 만만찮다. 일례로 보건복지부는 해외환자의 수도권 집중 완화, 새로운 해외환자 유치 거점마련을 목적으로 ‘지역선도 우수의료기술 육성지원사업’을 통해 2010년 부산 등 5개 지역(지자체와 의료기관 컨소시엄)에 46억 원, 2011년 4개 시도에 20억 원을 지원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외국인 환자 우수유치기관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너도나도 뛰어들다보니 병원들 간 차별화가 없다는 점.

실제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최로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열린 ‘MEDICAL KOREA(제 3회 글로벌 헬스케어 & 의료관광 컨퍼런스)’에 참여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한국 병원들의 장점은 비용대비 우수한 의료서비스라고 말한다. 몇몇 병원들이 특화 전문분야를 강조하지만 이 역시 중복된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부스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병원 간 차이를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또 한국 병원들에 대한 니즈(needs)가 기대만큼 크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경희대 경영학과 정기택 교수는 지난해 말 발표한 ‘의료산업의 글로벌화 전략’이란 연구를 통해 “정부가 헬스케어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인환자 유치에 집중하고 있지만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10년 국내 해외환자 유치 실적은 약 8만5,000명, 진료수입은 547억원으로 추계된다. 이는 같은 시기 싱가포르 실적(47만명, 1조17억원)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 헬스케어를 10조원 이상의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병원 수출’이라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전에도 국내 의료기관들이 해외로 진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의원급들의 진출이 주를 이뤘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병원들의 러시가 이어지고 있고, 진출국도 중국, 동남아 등을 넘어 미국, 러시아, UAE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병원의 해외진출 지원방안(의원, 검진센터 등은 제외)’에 따르면, 차병원(미국), 동산의료원, 윌스기념병원(이상 카자흐스탄), 우리들병원, 한일병원, 삼성서울병원(이상 UAE), 가야자모병원(베트남), 서울송도병원, 연세친선몽골병원(이상 몽골), 연세SK병원, 마리아병원, 인하대병원, 벨리쥬여성병원, 서울성모병원(이상 중국), 안동병원(싱가포르) 등이 각각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이중 우리들병원은 중국, 인도네시아, 터키 등에도 진출한 상태다. 여기에 지난해 세종병원, 서울대병원, 고대의료원 등이 카자흐스탄 정부와의 MOU 체결로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강동경희대병원은 우즈베키스탄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의료원은 2010년 UAE 두바이에 메디컬센터를 열고 운영 중이다.

이처럼 최근 1~2년 사이에 중대형 병원들의 해외 진출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로는 ▲세계 의료시장에서의 병원 신증축 시장 확대 ▲병원의 해외 진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한국의료의 위상 향상 ▲한류 열풍 등에 따른 한국 브랜드 이미지 상승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UAE, 카자흐스탄, 러시아, 베트남 등 소위 신흥 국가들이 최근 국민 소득 증가 및 정치적인 이유로 병원을 새로 짓거나 늘리는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명 ‘병원 플랜트 수출’이라고도 불리는 병원 수출은 병원 설계 및 건설뿐만 아니라 IT 인프라 구축, 의료기기 등 장비 구입, 교육 훈련, 금융 프로그램 등 병원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관련 시장 규모는 2009년 370억 달러(연평균 성장률 9.5%,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0년에는 1,000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클리블랜드클리닉은 지난 2010년 UAE 아부다비 국부펀드와 병원 건설과 관련된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의료 강국이라고 불리는 국가 정부들이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은 수출신용보증기구(ECGD)를 만들어 병원 수출 관련 프로젝트들에 대한 자금을 최대 100%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의료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캐나다에서조차 정부 주도하에 지역 내 의료 및 산업 네트워크를 구성해 관련 프로젝트 수주에 나설 정도다.

직접적인 수익 외에 병원 수출에 따른 병원 브랜드 이미지 상승, 외국인 환자 유입 등 간접적인 효과를 고려하면 가히 ‘황금 시장’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정부, 제도 개선 통해 적극적으로 나서


앞서 언급한 캐나다, 영국은 물론, 사실상 한국과 의료관광 관련 산업의 경쟁국가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 인도 등도 2000년대 초반부터 ‘병원 수출’에 뛰어든 상태.

반면,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2009년 의료법을 개정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정부의 정책이 아직 외국인환자 유치에만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지만, 병원 수출에 대한 의지도 분명하다.

정부는 현재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UAE,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9개국을 의료 수요가 증가하는 신흥시장으로 내다보고, 매년 1개국을 지정해 양국교류채널을 총동원해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그 첫 번째로 수교 20주년을 맞은 카자흐스탄을 핵심 전략국가로 선정했다. 같은 해 세종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고려대의료원 등이 카자흐스탄 알마시티 보건국과 간이식 환자 송출, 의료인연수 등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지난해 정부는 아부다비, 두바이 등에서 한국 의료인 면허를 인정토록 UAE와 국가 간 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들만을 놓고서 한국 병원들이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거나 ‘황금시장’에 합류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병원, UPMC(University of Pittsburgh Medical Center), 오스트리아의 바메드(VAMED), 인도의 아폴로병원(Apollo Hospitals), 포티스병원(Fortis Hospital), 싱가포르의 파크웨이홀딩스(Parkway Holdings), 래플즈병원(Raffles Hospital) 등 병원 수출을 통해 수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병원들에 비해 아직 경험이나 ‘브랜드 가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열린 ‘MEDICAL KOREA’에 참석한 알리 오바이드 알 알리 아부다비보건청 국장은 삼성의료원 등 UAE에 진출한 한국 병원들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기자에게 “한국은 (UAE에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보다 앞서 진출한 태국이나 싱가포르보다 홍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27면 인터뷰 참조).

황금시장 경쟁 아직은 격차 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은 1999년 존스홉킨스메디슨 인터내셔널(Johns Hopkins Medicine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초기에는 해외 환자 유치에 집중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 40개국 정부, 의료분야 컨소시엄, 의사단체, 학술연구기관 등에 병원 경영지원, 병원 위탁 운영, 의료진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 제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UPMC는 국제영리서비스과(International Commercial Services Division)를 중심으로 진료관리, 인프라스트럭처 자문, 중개과학, 영리상품 개발 분야 등 해외진출을 위한 공급모델을 다양화했고, 특화 진료 영역도 확실하다. UPMC는 이탈리아에서는 장기이식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아일랜드에서는 암센터를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카타르에서는 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도 모 대학병원과 연계해 심장센터를 설립해 아시아 환자들을 유치코자 했지만 규제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병원 수출 시장에서 이 미국 병원들의 성공은 세계적인 병원 브랜드와 높은 인지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하지만 아시아지역에서는 이 병원들이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아폴로병원, 래플즈병원, 포티스병원 등의 병원들이 지리적 이점 등을 앞세워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

1983년 설립된 아폴로병원의 경우 다른 세계 유수의 병원들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현재 아시아 지역에 35개 병원을 소유하고 11개 간호대학과 800개 약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8개 국가에 직접투자 및 위탁경영 형태로 진출해 있는 아시아 최대 민간병원으로 성장했다. 초기에는 외국인 환자 유치에 전념했지만 최근에는 국제컨설팅 사업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영역으로 확대해 병원 수출 분야에서만 2억8,300만달러(2009년)의 매출을 올렸다.

아폴로병원은 어떤 형태의 병원 수출 방식으로 한 해 수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을까. 대표적인 예로 스리랑카 콜롬보병원(350병상) 설립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아폴로병원은 47%의 지분을 투자하는 형태로 이 병원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해 병원 설계에서부터 의료장비 세팅, 의료인력 교육 등을 맡아 운영하며, 이전까지 치료를 위해 호주나 태국을 갔던 환자들의 발길을 스리랑카 내부로 돌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가나 아크라 지역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 타당성 조사, 방글라데시 다카의 330병상 규모 3차병원 운영관리 등의 병원 수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 다른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간병원그룹 중 한곳인 싱가포르의 파크웨이홀딩스 또한 병원 수출로만 2008년 6억5,500만달러의 실적을 올린 바 있다. 래플즈병원, 포티스병원 또한 아시아지역 병원 수출 분야에서 강자로 꼽히는 이들이다.

오스트리아의 바메드는 앞서 언급한 병원들과는 독특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1982년에 설립된 바메드는 6개 병원 등을 소유하고 병원 및 의료분야 국제 프로젝트에 특화된 병원그룹이다. 병원 설립, 인력 관리, 교육 및 운영 등의 서비스와 자사 브랜드의 의료기기를 공급하고 구매업무와 IT솔루션도 제공하는 등 말 그대로 병원 수출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유럽 등 35개 국가의 339개 병원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련 수주액만 연간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중 해외 수주액이 절반을 넘는다.

한국판 ‘바메드’ 실현 가능성은?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주요병원들의 병원 수출 전략은 어떠할까.

헬스케어분야를 신성장 사업으로 꼽은 삼성그룹의 경우, 지향하는 바가 앞서 언급한 바메드와 닮았다. 현재 삼성그룹은 삼성의료원, 삼성메디슨, 삼성생명, 삼성SDS 등 각 계열사들을 견인해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바메드와 같이 병원 건설 및 운영에서 바이오, 의료기기, IT, 전산화 등을 한데 묶은 토탈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연세의료원은 국내에서의 U-헬스 분야 사업 경험을 해외로 확대해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의료IT융합기술 분야 정부 국책 사업을 수주하겠다는 등의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카타르 정부와 장기이식, 심장, 종양 등 임상 분야 협력을 비롯해 IT기반 병원 운영시스템 도입, 의료인력 교류 확대 등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재와 같은 형태의 병원 수출로는 아폴로병원, 포티스병원 등과의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모 대학병원 원장은 “아폴로병원 등과 같은 경우 주식회사 형태라는 점에서 자본력 투입이 쉬운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운을 뗀 뒤, “투자와 운영을 함께 하겠다는 병원과 투자는 해당 국가에서 하고 운영만 하겠다는 국내병원과 경쟁이 붙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그렇다고 정부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위원도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병원의 해외진출 지원방안)를 통해 “현재 국내 병원의 해외 진출에는 자본력 부족, 현지에 대한 정보 부족, 한국 의료서비스에 대한 이미지 미 구축 등의 장애요인이 존재한다”면서 “(병원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되고,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병원은 정확한 목표와 비전을 수립하는 등의 준비가 필요하고, 여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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