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호(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청년의사가만난사람]

올해 9월,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은 가운과 수술복을 챙겨 입은 깜찍한 꼬마의사들의 습격을 받게 될 듯하다. 해부학교실 한승호 교수가 4년 전부터 기획해온 ‘인체탐구학교’가 드디어 문을 열기 때문이다. 적게는 60명에 달하는 꼬마의사들은 의대생들이 실습하는 시뮬레이션센터부터 심혈관센터까지 의대와 병원을 종횡무진하며 깊고 넓은 의학의 바다를 체험할 예정이다. 한승호 교수에게 이런 행사를 기획한 이유와 의미에 대해 들었다.

- 미니의과대학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가 속해있는 응용해부연구소에서는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 지방과 수분을 일종의 플라스틱으로 대체해 반영구적으로 보존 가능하게 만드는 사체보존기술)작업을 한다. 1990년대 초에 창시자인 하이델베르그의대 군터 폰 하겐 교수가 진행하는 워크숍을 수료하고 와서 학생들을 위한 표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병리표본 플라스티네이션 전시회를 했는데 방학 동안 학생들이 엄청나게 찾았다. 그 전에도 학생들이 탐방을 많이 왔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체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의학과 의료에 대해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획은 4년 전부터 했고 2년 전 학교의 정식 허락도 받았다. 병원, 의대, 전국 최고의 해부학 시설까지 든든한 인프라가 강점이다. 의사 지망 학생은 물론 인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미국 콜로라도 의대에서 진행하는 미니메디컬스쿨(MMS)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명칭은 잠정적으로 ‘인체탐구학교’로 생각하고 있다.

-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9월 쯤 시작할 예정이다. 하루 네 시간씩 10회 강의다. 30명씩 두 반을 운영해보고 내년에는 심화반을 두 반 더 편성해볼까 한다. 일반인을 위한 반도 만들고 싶다. 지금 우리 학교 능력으로는 최대 150명 정도 정원이 될 것 같다. 학교의 허가를 받았으니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시뮬레이션센터 등도 이용하는 등 동적인 실습이 가능하다. 두 시간은 해부학자가 기본 강의를, 전문의사가 임상강의를 하고, 두 시간은 관련 실습, 병원 투어를 한다. 소소하게는 전문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밑그림 색칠하기, 인체 조각 맞추기 등등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제대로 가르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비용이 높아질까 걱정이다. 방학에 열리는 2박 3일 인체 캠프에는 등록비용을 저렴하게 책정해서 많은 학생들이 부담없이 참여하도록 할 예정이다. 학교에서 몸 전체를 가르친다면 캠프에서는 유전자나 법의인류학 등 재미있는 토픽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배우는 식으로 진행한다.

- 다른 곳에서도 의사 체험이나 의학캠프 등 비슷한 기획을 하는 것으로 안다. 차별점은?

‘의사’들이 직접 가르친다는 점이다. 인체, 생명, 의학, 건강이라는 네 개 키워드가 있다. 들어오면 건강검진부터 할 거다. 근골격계를 배울 때 자기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수업을 한다. 자기 사진에 나타난 성장판을 보면서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면,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들어와서 키 크는 과정, 생활 습관, 심지어 가족력까지 연결해서 배우는 식이다. 자기 몸을 보고, 생명이 이래서 소중하구나, 의학적으로는 이렇게 접근하는구나, 건강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심혈관에 대해 배울 때는 심폐소생센터에서 소생술도 익히는 식이다. 메디컬 일러스트부터 로봇 공학에 이르기까지 인체를 통해 다양한 세계를 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줄 가운과 수술복도 준비하고 있다.

- 인문의학교실이나 소아청소년과가 중심이 돼야할 것 같은 기획인데.

안 그래도 소아청소년과 교수님들께 도움을 청했더니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하시더라. 좀 더 설명하자면 해부학과가 단일 건물을 갖고 있는 곳은 우리 학교가 유일하다. 1년에 250여 명이 시신을 기증한다. 기증하시는 분들의 뜻을 언제든 수용하기 위해서 의료원에서 기꺼이 시설을 내주었다. 그런데 요즘 의학교육에서는 학생들을 임상에 빨리 노출시키는 추세라 해부학 실습을 8주 밖에 안한다. 이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어린이용 의학책 중에서 의사가 제대로 감수하고 번역한 책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틀린 부분도 있고. 학교에서 직접 교재를 만들어 인체탐구학교 학생은 물론 모든 아이들이 믿고 읽을 수 있는 의학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 주위 반응은 어떤가?

원내 회보를 통해 소식을 알렸더니 의대 동문 20~30명이 참여하고 싶다고 문의가 왔다. 지역 학부모를 대상으로 예비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은 이것도 ‘스펙’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시험을 봐서 애들을 뽑자는 제의도 있었다. 그런데 가톨릭 재단에서 굳이 영재를 키워야할까 싶더라. 확실히 관심들은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 생각은 의대생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다, 하하. 대대적으로 알릴 생각은 없고 알음알음으로 점점 커지는 코스가 됐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시스템을 통째로 지역으로 옮겨서 진행하고 싶기도 하고. 조금씩 알려져서 나중에 전담하는 인력도 생기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착이 됐으면 좋겠다. 아마 이 인터뷰가 가장 큰 모집 공고가 될 것 같다, 하하.

- 복안(復顔) 전문가가 등장하는 공포영화에 자문도 하고, 최초로 김대건 신부 복안에 참여하는 등 특이한 이력을 많이 갖고 있던데.

나는 일관된 길을 가는데, 곁다리로 얻은 얕은 지식을 가져가려는 데가 있다, 하하. 내게 가장 중요한 중심은 임상해부학이다. 최소 침습 수술을 할 때 환부까지 가는 루트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고 한국인 특유의 신체구조를 연구해서 그에 맞는 수술재료도 만들 수 있다. 해부학의 영역이 아직 넓다는 뜻이다. 우리 해부학연구소에는 시신 기증이 연간 250구에 이른다. 이 분들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해야 할 역할이 많다고 생각한다. 인체탐험학교도 그 중 하나다. 인체탐험학교와 함께 레지던트·인턴들을 위한 임상술기센터도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 의료원에 소속된 의사들에게 병원에서 일하기 전에 기관절개, 동맥 기구 삽입, 폐·척수 천자 등 침습적인 시술을 미리 훈련시킬 예정이다. 전국 인턴 레지던트들이 이런 시술을 연습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할 생각도 있다. 또 급속히 발전하는 수술기법을 익히기 위한 전문 의사들의 트레이닝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가 1년 내내 의사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센터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이미 그렇게 활용되고 있지만. 이런 인프라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을 많이 고민하는 것이 비싼 강남땅에 해부학교실 건물을 지어준 학교와 시신을 기증해준 분들에 대한 예의지 싶다.

한승호 교수 가톨릭의대 졸업.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학생부학장. 가톨릭응용해부학연구소장

글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사진 김형진 기자 kimc@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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